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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시언 Nov 26. 2018

음성이 텍스트를 압도하는 시대

이런 시대는 지금껏 없었다

요즘은 음성이 텍스트를 압도하는 시대다. 팟캐스트나 유튜브, 동영상 등의 청각적 요소는 이해하기 편하고 음의 높낮이, 목소리 톤, 발음의 속도와 정확성 등 여러가지를 감각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돕는다. 


음성이 텍스트보다 뛰어난 장점 중 한가지는 시간활용도 측면이다. 예를들어 책을 읽으면서 운전을 할 수는 없지만, 음성을 들으면서는 운전도, 설거지도, 운동도 가능하다. 전화 통화는 글에 비해 훨씬 많은 양의 정보를 더 짧은 시간 안에 전달할 수 있고 답변도 바로 받을 수 있다. 


책은 먼 옛날에는 사치품이었다. 오늘날 책은 지식과 정보가 함축된 객체이지만 지루하고 재미없다는 이미지가 강하다. 실제로 책은 좀 지루하고 재미없는 측면이 있다. 공부가 재미있을리 없지않은가? 재미있는 공부라고는 초창기 뿐이고 그 다음부터는 대체로 재미없다. 재미없는걸 꾸준히 하는게, 그러니까 남들이 안하는걸 열심히 하는것이야말로 특별함을 가지는 방법이긴 하다.


요즘처럼 음성이라는 객체를 빠르게 전달하는 시대는 없었다. 과학기술의 기념비적인 발전으로 우리는 이제 텍스트보다 음성으로 뭔가를 주고받는 시대에 살고있다. 


음성은 여러가지 느낌을 주제와 함께 전달한다. 화난 목소리와 차분한 목소리는 다르다. 글은 감정을 전달하기가 힘들다. 문자메시지로만 이야기를 하면 이 사람이 날 사랑하는지 아닌지 알 수 없다. 따뜻한 말 한마디, 편안한 눈빛, 사랑스러운 표정은 그 자체만으로도 상대방을 사랑한다는걸 알릴 수 있는 방법이다. 


생각해보니까, 음성이 텍스트보다 여러가지 측면에서 더 좋다는 주제를 텍스트로 적고 있는 이 상황이 아이러니하다. 아무튼 음성은 텍스트를 압도하고 있고 앞으로 이런 현상은 가속화될 것이다. 요즘에는 목소리가 좋은것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재능으로 평가받는다. 얼굴이 잘생긴 것처럼 좋은 목소리는 그 자체로 실력이 된다.


나는 오래도록 글을 써왔고, 글이라는 객체를 좋아하고, 책을 몇 권 썼고 앞으로도 글을 꾸준히 쓸 생각이 있는 사람이지만, 현실에서 글이라는건 그다지 우수한 평가를 받지 못하는게 현실이다. 물론 독자는 항상 있고 좋은 글을 쓰려고 노력해야함은 당연하지만, 이제는 텍스트보다는 음성이 훨씬 더 매력적인 매체로 자리매김했다.


음성보다 글이 뛰어난 장점으로는 검색이 가능하고 장소에 구애받지 않은 상태에서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매우 시끄러운 장소에서는 음성 녹음이 힘들지만 글을 쓰는데는 별 지장이 없는 것이다. 게다가 텍스트는 검색을 할 수 있으므로 정보 공유 측면에서 음성을 뛰어넘는다. 나중에 음성을 검색할 수 있는 세상이 올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가능하지 않을까?


텍스트와 음성을 이분법적인 사고로 칼로 베듯 나눴지만 사실 음성과 텍스트는 보통 함께 움직인다. 예를들어 영상의 자막이나 음성의 자막이 그것이다. 사람들은 음성만 들을 때, 글만 읽을 때보다 음성과 텍스트를 함께 볼 때 더 오래도록 기억한다. 


예전에 기자들은 기자수첩이란걸 들고 다니면서 인터뷰나 취재를 할 때 메모를 하는게 일반적이었다. 요즘에는 메모도 하겠지만 녹취를 한다. 녹취를 하고 나름대로 정리해서 기사를 쓰는 것이다. 이렇게하면 메모보다 더 많은 정보를 더 빠르게 기록할 수 있다. 


음성이 텍스트를 짓누르는 시대에서 디지털 세대들은 혼란을 겪기 마련이다. 어릴때부터 키보드로 소통하는게 익숙한 까닭이다. 글은 익명성도 보장된다. 반대로 음성 소통의 시대에는 젊은이들보다는 실버 세대에게 큰 기회를 안겨줄 수 있다. 그들은 키보드 타이핑이 어려워서 텍스트를 못적거나 어릴적 교육을 받지 못해서 한글을 모르는 까막눈인 경우도 있지만 말을 못하진 않는다. 오히려 실버 세대들은 말을 훨씬 조리있게 잘한다. 이제 실버 세대들은 키보드 타이핑을 배우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음성 녹음 방법을 배우거나 영상 촬영을 배워서 자신이 하고싶은 말을 하는게 훨씬 더 트렌드에 맞는 일이 됐다.


나는 우리 할머니의 구수한 사투리와 그 특유의 음성 톤이 굉장히 매력적인 콘텐츠라고 생각해서 할머니와 함께 음성을 활용한 콘텐츠를 만들어보려고 계획했었지만, 본인께서 거절하시는 바람에 아쉬운 입 맛을 다시고 있다. (세계에서 으뜸가는 토론 논객이라고 하더라도 시골 할머니를 말싸움에서 이기는건 매우 힘들 것이다)


가까운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지만 글을 잘 쓰는 방법에 대한 시장이 있다. 앞으로는 말을 잘하는 방법에 대한 시장이 지금보다 더 커질 것이다. 말을 많이 하는 것과 조리있고 논리적으로 말하는건 다르다. 말하는 방법도 배우고 익힐 수 있는 하나의 '기술'이며 텍스트처럼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중요한점은 텍스트든 음성이든 주장을 펼치는 본인의 생각이 잘 정리되어 있어야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글을 잘 쓰는 사람은 보통 말도 조리있게 잘 한다.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방식 자체는 글이나 말이나 다르지 않으니까. 그 주장이 옳든 그르든 관계없이 글 쓰는 사람의 말은 일관적이고 깨끗한 논리를 가지는 경우가 많다. 결국 텍스트와 사운드는 함께 가야한다. 이제는 텍스트와 사운드를 나누지 않고 그냥 하나로 합쳐서 '텍스드(텍스트+사운드)'로 부르는건 어떨까? 텍사운드도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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