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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시언 Mar 25. 2019

네이밍의 중요성

마케팅은 기억과 인식의 전쟁

만일 당신이 은행나무와 폭포가 아름다운 공원의 이름을 지어야 한다면 어떤 이름을 붙여주겠는가? 


아마도 '은행나무 공원'이나 '폭포공원'이라고 붙여줄 것이다. 경상북도 안동시에서도 그렇게 했다.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일이다. 


공식 명칭은 안동댐쉼터였고 안동폭포공원이었다가 낙강물길공원으로 변했다. 2017년 어느 날, 누군가에 의해 아주 근사한 별명이 등장하는데 바로 '안동 비밀의 숲'이라는 네이밍이었다.


일반적으로 위치를 가지는 여행 스폿이란 그저 신경 써서 잘 만들고, 예산을 쏟아붓고, TV 광고를 집행하고, 공사를 통해 포토존을 만들고, 벤치와 주차장을 확장한 다음, 요즘 유행하는 핑크 뮬리를 심기만 하면 성공한다고 생각하는 담당자가 너무나도 많다. 현실은 절대로 그렇지가 않은데도 말이다.



마케팅은 기억과 인식의 전쟁이다


지역에서 네이밍과 브랜드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낮은 지는 안동 수돗물 명칭인 상생수의 로고 디자인 공모의 수상자 중 안동 시민이 한 명도 없다는 사실만 봐도 명백하게 알 수 있다. 대도시일수록 네이밍에 대한 관심도가 높고 규모가 작아질수록 네이밍에 대한 관심도도 작아진다. 이건 지자체뿐만 아니라 기업에도 해당된다. 작은 기업일수록 상품의 퀄리티만 좋다면 무조건 성공할 수 있다는 환상에 사로잡힌다. 상품의 질 못지않게 중요한 게 이름인데도 말이다.


이제 시민들과 여행객들은 '안동 비밀의 숲'을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로 쓴다. 검색 포털이나 인스타그램에다가 검색만 해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낙강물길공원은 상대적으로 기억하기 힘들고 발음이 어렵다. ‘낙강 물길’이라는 게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도 불명확하다. 하지만 ‘비밀의 숲’은 한 번만 들으면 기억 속에 돌풍처럼 스며들어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다.


안동 시내에서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낙강물길공원'을 들어본 적이 있냐는 설문 조사를 한다면, 낮은 확률로 안다는 답변을 들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단어가 '비밀의 숲'이라면 (현재 데이터상) 최소 33%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 (내가 이 데이터를 가지고 있는 이유는 그 이름을 처음 만들어 인터넷에 공개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안동 비밀의 숲이라는 별명을 퍼트린 장본인에게는 왜 그 명소를 대대적으로 오픈해서 '더 이상 비밀이 아닌 비밀의 숲'으로 만들었냐는 질문을 많이 한다. 그러나 그들이 망각하고 있는 한 가지는 정작 본인들도 누군가가 올려놓은 콘텐츠를 보고 그 장소를 알게 됐다는 사실이다.



크리에이터 = 카피라이터


별명을 짓는 것이, 성공적으로 네이밍 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대단히 단순하다. 단, 어떤 이름이나 아이디어를 고객 집단의 기억 속에 안착시키는 게 가능한 상태여야 한다. 즉, 마케팅 파워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아무도 불러주지 않는 이름이라면, 이름이 없는 것과 같다. 온라인에서 인기를 끌지 못하면 오프라인에서도 인기를 끌지 못한다. 과거와 달리, 요즘 콘텐츠 업계에선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콘텐츠를 더 이상 명확하게 나누지 않는다.


이름 또는 명칭은 무척이나 중요해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코카콜라와 애플, 삼성, 디즈니 등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대부분의 단어들이 해당 카테고리의 리더들이며 보통명사처럼 쓰인다. 코카콜라는 다양한 콜라 제품 중 하나일 뿐이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코크'가 곧 '콜라'로 통한다. 


품질이 좋은 것보다 이름이 좋은 게 낫다. 품질은 언제라도 향상할 수 있지만 이름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책 쓰는 작가들이 제일 오래도록 고민하는 분야는 책 제목이다. 네이밍이 성공 여부를 결정짓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름을 짓는 행위, 네이밍은 그 가치가 명백한데도 불구하고 중요성이 낮게 평가되고 있다.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은 제목을 잘 지어야 한다. 제목이 생명이고 심장이며 핵심이다. 제목에서 인기를 끌지 못하면 내용은 읽히지 않는다. 당신의 콘텐츠가 충분히 멋진데도 인기가 없다면, 네이밍을 못한 건 아닌지 점검해보자.


예전 콘텐츠 관련 조직에서 근무할 때 극장용 3D 애니메이션을 제작한 적이 있다. 이때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 캐릭터 이름을 정하는 데만 3개월이 넘게 소요됐다. 매일같이 회의하고 관계자들에게 설문조사를 했으며 데이터를 쌓았지만 결정은 매우 힘들었다. 그만큼 이름이 중요하다. 


어떻게 하면 제목을 잘 지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름을 잘 정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이야말로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의 출발선이다. 크리에이터라면 모두가 카피라이터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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