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매일 쓴다
작가는 매일 쓴다
나는 지난 몇 년간 여행기자와 여행 리포터 등의 활동을 하면서 여러 명의 작가들을 만났다. 경북 영양 출신의 삼국지로 유명한 이문열 작가를 비롯해서 객주라는 작품으로 유명한 김주영 작가, 그 외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여러 작가들을 만났고 그들의 강연, 담소 자리를 통해 작가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또한 나 역시 책 쓰는 작가로서 나와 비슷한 작가들을 많이 알게 됐고 다양한 공간에서 작가들의 이야기도 들어볼 수 있었다.
이 모든 이야기들을 종합해보면,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 대부분의 작가들은 정해진 시간에 매일 글을 쓴다는 점이다. 물론 한 줄도 못 쓸 때도 있고 생각 이상으로 많은 글을 쓰는 날도 있을 것이다. '글을 얼마나 썼나?'가 중요하다기보다는 '오늘도 글을 썼나?'가 중요한 게 바로 작가의 시간이다. 어떤 콘텐츠든, 특히 글은 양이 모든 걸 증명하진 않는다. 책 한 권보다 더 효과적인 단 하나의 문장도 있다.
작가들은 치명적인 단어들의 조합을 생각한다. 그들은 매일 쓴다. 중요한 건 글을 쓰는 행위 자체가 아니라 반복에 있다. 그들은 매일 쓴다. 매일! 이 매일 글을 쓰는 행동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싶다면, 우리 주변에 작가가 얼마나 있는지 보면 된다.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건 글쓴이를 뜻하는 작가다. 시인도 포함된다.
우리가 일주일간 매일 글을 써야 한다는 미션을 받는다면 어떨까? 그것도 매일 정해진 시간에. 물론 조건은 생업을 유지하면서다. 7일 정도는 조금만 노력하면 누구나 매일 글을 쓸 수 있다. 하지만 70일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70일간 매일 정해진 시간에, 그것도 생업을 유지하면서 글을 쓸 수 있는가? 굉장히 힘들 것이다. 작가에 도전했다가 포기하는 사람들 중 대다수가 매일 글 쓰는 게 어렵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작가가 되려면 매일 글을 써야 한다. 변명은 다른 사람에겐 통할지 몰라도 자기 자신에겐, 그리고 글에겐 통하지 않는다. 철학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은 속여도 자기 자신은 결코 속일 수 없다.
작가들은 지겹도록 매일 글을 쓴다. 하지만 생각과는 다르게 작가들이 하루 종일 글만 쓰진 않는다. 전업으로 글을 쓰는 작가는 의외로 드물다. 오늘날에는 책을 읽는 사람이 많지 않은 데다가 글을 쓰는 행위 자체가 시간이 여유롭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글이 나오라는 보장도 없기 때문이다. 오래 쓴다고 능사가 아니다. 또한, 글을 쓰려면 특정 분야에 대해 어느 정도 전문성이 있어야 하고 그것에 대해 연구하고 공부하는 시간이 동반되어야 하는 까닭에 하루 종일 글을 쓰는 작가는 거의 없다.
네임드 작가들이 얼마나 자료조사를 많이 하는지 직접 보면 깜짝 놀라게 된다. 그들이 자료 조사할 때를 보면, 사소한 것 하나도 사진으로 촬영하고 메모를 하고 녹음을 해둔다. 그들의 작업실에는 엄청난 양의 자료들, 즉 데이터베이스가 있고 그 자료들을 바탕으로 글을 토해내듯 써 내려간다.
이런 자료조사 기간, 그리고 글을 쓰는 기간과 시간, 전문성의 필요 등을 고려할 때 오로지 글만 쓴다고 해서 반드시 작가로서 성공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전문분야에서 생업을 유지하며 그것을 바탕으로 글을 썼을 때 더 효과적인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작가에게 다양한 경험은 필수다. 보통 작가들은 말보다는 글로 쓰는 걸 더 좋아한다. 그러니까 작가가 되려고 하는 것이지만, 작가들 중에는 말이 많은 사람도 나는 많이 봤다. 공통적으로 그들은 이야기하는 걸 좋아한다. 이야기하는 방식은 글이 될 수도, 말이 될 수도 있다. 작가들은 뭔가를 소개하고 알려주는 것에 희열을 느낀다. 전달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 요즘에 크리에이터라고 부르는 사람들 역시 기본적으로는 작가의 마인드와 다르지 않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생각을 잘 정리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작가들의 주된 취미 중 한 가지가 산책이다. 욕조에서 유레카를 외쳤던 것처럼 길거리의 잡초 한 포기에서도 쓰고자 했던 글의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조용하게 걷다 보면 생각을 정리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매일 글을 쓴다고 해서 오래도록 글을 쓰는 건 아니다. 길어봤자 4시간 정도이고 이것도 전업작가일 때나 그렇다. 보통은 하루에 한두 시간 정도이고 더 짧을 때도 있다. 글 쓰는 시간과 생각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시간이 따로 분리되어 있으므로 글 쓰는 시간 자체는 그리 길지 않다. 포인트는 만족스러운 글을 썼느냐이고 매일 글을 썼나 하는 것이다.
급진적으로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우리는 매일 밥을 먹는다. 작가들은 글 쓰는 걸 밥 먹듯이 한다. 그러니까 매일이다.
어제 썼던 글이 모조리 쓰레기통으로 처박히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있다. 한 달 동안 썼던 스토리를 모조리 갈아엎어야 할 때도 왕왕 발생한다. 결과물이 없다고 해서 글을 쓰지 않은 것은 아니므로 작가에게 이런 행동은 큰 문제는 아니다. 작품 완료가 좀 늦어질 뿐이다. 작가들은 보통 자기 작품에 대해서만큼은 상당한 프라이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는 작품은 본인이 파괴해버린다. 장인정신이다.
작가들은 글 쓰는 행동을 습관으로 만든다. 습관처럼 글을 쓰는 것이다. 당신이 만약 100일 동안 매일 정해진 시간에 글을 썼는데 101일째 되는 날 어떤 상황에 의해 글을 쓰지 못했다고 해보자. 이때에는 마치 금단증상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들고 입 안에 가시가 돋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사람은 매일 정해진 시간에 하던걸 못하게 되면 원래 이런 느낌을 받는다. 습관을 만드는 건 어렵지만, 한 번 만들게 되면 그다음부터는 쉬워진다. 그때부터는 내가 글을 쓰는 게 아니라 습관이 글을 쓴다.
정리하자면, 작가들은 글을 쓰고 싶어서 쓰는 게 아니라 자기도 모르게 습관처럼 쓴다. 이것이야말로 작가다.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어서 쓸 때도 있지만 보통은 기계처럼 반복적으로, 루틴으로 글을 쓴다.
나는 보통 이른 새벽이나 아침에, 머리가 맑을 때 글을 쓰는 편이지만 라이프사이클에 따라서 밤늦게 쓰는 작가들도 많이 봤다. 글을 쓰는 타이밍은 크게 중요하지 않는 듯하다.
매일 글을 쓰는 사람과 쓰고 싶을 때 쓰는 사람의 글은 천지차이다. 글이라고 하는 건 컨디션이나 기분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지기 때문에 완벽하게 똑같은 글을 일주일 뒤에 아무런 자료 없이 또 쓸 수는 없다. 따라서 저장과 관리, 백업 등이 매우 중요하다. 다행스러운 건 글이라는 매체는 용량이 크지 않고 어디에나 쉽게 저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장, 백업, 관리만 할 수 있다면 꼭 전문적인 프로그램이 아니어도 된다. 클라우드와 연결된 스마트폰 메모장도 좋은 선택이다.
작가가 되고 싶다면 일단은 매일 뭐라도 써야 한다. 그게 뭐든 관계는 없다. 그리고 그 글들이 어떻게든 저장, 백업, 관리, 아카이브 되어 있어야 한다. 언제 예전에 썼던 글을 다시 참고해서 써야 할지는 아무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