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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시언 Apr 29. 2019

장비와 성능보다 중요한 것

창의력은 제한된 상황에서 나온다

요즘 동영상이 대세다. 유튜브뿐만 아니라 일상용 동영상이나 인스타그램 전용 60초 동영상, 세로 형태의 색다른 동영상, 감각적인 홍보 영상을 비롯해서 다양한 스타일의 동영상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업계에서도 동영상 쪽에 관심이 많고 자본과 인재들도 많이 몰리고 있다. 동영상은 이제 더 이상 거부할 수 없는 물결이며 이미 많은 사람들이 영상 업계에 뛰어들었다.


동영상이 대세로 떠오른 건 기술 발전의 영향이 크지만 소리와 영상을 함께 볼 때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는 뇌과학 또는 심리적인 요인도 작용한다. 그래서 요즘에는 누구나 동영상 편집을 배우고 싶어 한다. 


크리에이터가 찾는 특별함


얼리어답터들에게 사진이라는 매체는 더 이상 색다른 게 아니다. 지루하고 낡은 것이다. 창조적인 사람들에게 사진은 이제 더 이상 재미있는 무엇이 아니다. 스마트폰 하나만으로도 예쁜 사진을 얼마든지 촬영하고 편집할 수 있는 시대, 그러니까 사진이라는 게 누구나 찍을 수 있는 보편적인 것이라면, 매력은 없어진다. 하지만 동영상은 누구나 배우고 싶어 하고 또 그만큼 재미있으며 많은 관심을 받을 수 있다. 오늘날 크리에이터에게 영상이라는 매체는 아주 매력적이고 미지의 대륙 같은 느낌이다. 


동영상 콘텐츠는 다른 콘텐츠 종류에 비해 보다 많은 창의력을 강요한다. 예를 들어 '하늘'이라는 주제의 사진이라면 범위가 넓지 않고 큰 범위에서 비슷할 수 있지만, 동영상은 그렇지가 않다. 어떻게 편집하는지, 내레이션이나 음악의 분위기, 화면 전환 효과나 피사체의 구성 등 넓은 범위로 창의력이 확장된다. 똑같은 영상이라도 슬픈 음악을 깔면 우울한 분위기를, 신나는 음악이라면 신나게 여행하는 느낌을 줄 수 있다. 더 많은 창의력을 요구한다는 건 반대로 이야기하면, 제작자가 자신이 원하는 창의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다는 의미다. 모름지기 콘텐츠 제작자라면, 색종이에 호랑이 한 마리를 그리는 것보다 A4용지에 호랑이 10마리를 그리는 게 낫다는 것에 동의할 것이다.


동영상뿐만 아니라 콘텐츠와 관련된 뭔가를 처음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장비부터 찾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값비싼 DSLR이 있어야 블로그를 할 수 있다던가 이틀 전에 출시된 최신형 미러리스가 아니면 좋은 영상을 촬영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이건 마치 종교 같아서 초보 크리에이터들을 단숨에 사로잡는다. 하지만 장비가 있어야만 동영상을 제작하고 크리에이티브한 콘텐츠를 만들 수 있을까? 절대로 그렇지 않다.



창의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의 모든 기능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사용하는 사람은 드물다. 각자 사용 패턴이 다르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작업을 편안하게 할 수만 있다면 다른 기능은 쓸모가 없다. 


성능은 항상 익숙함보다 빠르다. 사용자가 원하는 기능은 매우 다양하고 범위가 넓어서 사실상 모든 고객을 만족시키는 건 불가능하다. 장비는 최대한 많은 사용자를 만족시켜야 하는 까닭에 다양한 기능을 최대한 욱여넣는다. 


우리가 만약 장비의 모든 기능을 마스터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러는 동안 새로운 기능이 추가된 장비가 벌써 출시된다. 그러면 또 그걸 마스터해야 하고, 그러는 동안 또 새로운 장비가 나오고... 반복된다. 즉, 뛰어난 기계 전문가가 아니라면 그 장비를 마스터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스마트폰에서는 얼마든지 무료로 날씨 정보를 확인할 수 있지만, 어르신들 중 일부는 오늘날에도 114에 전화를 걸어 유료로 날씨정보 ARS를 듣는다. 그것이 더 편하고 익숙하기 때문이다. 어르신 입장에선 스마트폰으로 날씨 확인 방법을 배우느니 차라리 돈을 내고 114를 듣는 게 더 편하다. 중요한 건 어떤 걸 사용할지는 사용자 선택이며 날씨를 확인한다는 결과만 나오면 된다는 점이다.


강의를 나가면, 청중들은 나에게 동영상을 편집하는 프로그램이 무엇인지 왕왕 묻는다. 좋은 질문이다. 그러나 거기서 끝나면 안 된다. 프로그램이 무엇인지 알았다고 해서 바로 그 사람처럼 사용할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A라는 프로그램을 쓰다가 B라는 프로그램으로 넘어가도 빠른 시간 안에 이전과 비슷한 품질의 영상을 제작할 수 있다. 어떤 효과가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비와 성능보다 중요한 것


과거에 블로그로 유명했던 사람이 페이스북에서, 인스타그램에서, 그리고 유튜브에서 또다시 성공하는 사례는 무수히 많다. 그들은 블로그에서 유튜브로 넘어가도 빠른 시간 안에 구독자를 모으게 된다. 어떤 매체에서든 한 번 성공했던 사람이라면, 독자들이 뭘 원하는지 잘 안다.


그래서 장비와 성능보다 중요한 건 원리와 기초지식이다. 가령, 모든 걸 편하게 얻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동영상의 프레임 단위도 공부하지 않고서 스피드 램프 효과(빠르게 움직였다가 느려졌다가 다시 빠르게 움직이는 등의 효과)를 어떤 프로그램으로 넣었는지 묻는다. 60 프레임 이상으로 촬영했다면 슬로를 걸어도 좋지만, 24 프레임으로 촬영됐다면 슬로를 걸었을 때 뚝뚝 끊기게 된다. 이것은 프레임 단위 문제이지 프로그램 문제가 아닌데도 사람들은 '이 프로그램에서는 슬로 걸면 뚝뚝 끊긴다'라고 판단하고 또 다른 편집 프로그램을 찾아 떠나버린다. 


느려 터진 노트북과 컴퓨터, 업데이트를 미룰 수밖에 없는 오래된 스마트폰으로도 원하는 작업을 할 수 있다. 꼭 동영상 분야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장비와 프로그램의 성능은 우리의 작업을 도와주는 역할이지 '주'는 아니다. 주력은 제작자의 아이디어와 노력이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공부다. 포토샵이 없어서 사진 편집을 못한다기보다는 '포토샵이 없어서 편집을 못한다'는 변명이 필요한 건 아닐까? 잘 찾아보면 비슷한 기능을 수행하는 수많은 프로그램들이 차고도 넘친다. 


위기상황에서 영웅은 태어나고 크리에이티브는 제한된 상황에서 나오기 마련이다. 제한된 자원과 환경으로 어떻게든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작업이 바로 크리에이티브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게 다 갖춰진 상태라면 누군들 창조적 인재가 되지 못하는겠는가?


장비나 성능이 작업물을 조금 더 좋게 만들어줄 순 있어도 그 작업물 자체를 제작해주는 건 아니다. 제작은 스스로 해야 하고 자신이 원하는 결과만 낼 수 있다면 장비나 프로그램은 어떤 걸 써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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