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녁은 좁게, 조준은 명확하게
정보가 부족한 시대에는 자세하고 깊이 있는 콘텐츠가 필요했다. 백과사전이 대표적인 종합 콘텐츠다. 도서관에서 하루를 보내고, 색인을 찾고, 사전을 뒤적거리고, 찾아보기표를 붙여가면서 하나의 큰 콘텐츠 안에서 정보를 습득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는 간단하고 가벼운 콘텐츠가 대세로 떠올랐다. 독자들은 더 이상 길고 지루한 글을 읽지 않는다. 현대인들은 이런저런 일들로 매우 바쁘며 시간이 항상 부족하므로 완벽하게 필터링되고 맞춤화된 내용, 즉 큐레이션 된 콘텐츠를 원한다. 내 마음을 꿰뚫어 본 듯한 콘텐츠는 거부하기 어렵다.
콘텐츠가 가벼워지려면 타깃 범위가 좁아야 한다. 대학생이면 대학생, CEO면 CEO, 30대 직장인, 아이 두 명을 키우는 30대 초보 엄마, 운전을 처음 해보는 20대 신입생 등. 타깃 범위를 좁혀야만 콘텐츠가 길게 늘어나지 않는다.
백과사전은 범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자료라서 누구에게나 환영받을 수 있다. 이걸 반대로 말하면, 누구에게도 관심을 끌지 못할 가능성을 상징한다. 오늘날 콘텐츠의 과녁은 좁아야 하고 조준은 명확해야 한다. 콘텐츠가 가볍기 때문에 독자층이 좁지만, 양이 같이 늘어나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보면 오히려 독자층이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 초보 운전자용 콘텐츠와 CEO를 타깃으로 한 콘텐츠를 하나로 묶는 것이 아니라 따로 분리된 두 개의 콘텐츠를 만드는 개념이다.
오늘날의 콘텐츠는 더하는 게 아니라 뺄수록 좋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콘텐츠라고 말하는 건 보통 디지털 콘텐츠를 뜻하기 때문에 디지털 콘텐츠의 장점을 이용해야 한다. 무료로, 그리고 무제한으로 복제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큰 덩어리 하나가 아니라 잘게 쪼개진 여러 개를 만들 수 있다는 점 말이다.
콘텐츠가 간단해지고 명료해질수록 나타나는 주된 현상은 양적 증가다. 방대하고 종합적인 하나의 자료가 아니라 낱개로 분리된 수많은 콘텐츠로 바뀐다. 그러면서 품질은 좀 더 좋아진다. 깔끔하면서도 진한 맛을 자랑하는 어느 맛집의 국물처럼, 콘텐츠도 간단해질수록 진해진다. 색이 진해진다는 건 자신만의 스타일을 나타낼 수 있다는 의미다. 900페이지짜리 정형화된 백과사전을 두 권 들고 다니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10페이지짜리 아주 얇은 핸드북은 5권 정도는 들고 다녀도 큰 무리가 아닐 것이다.
간단하게 만들면 양은 늘어난다. 60분짜리 영화가 아니라 6분짜리 에피소드 10개가 나오는 셈이다. 콘텐츠의 양이 증가하면서 스타일이 만들어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스타일은 좀 더 다듬어진다. 왜냐하면 양이 증가하면서 자연스럽게 콘텐츠를 만드는 횟수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콘텐츠의 양은 특수한 상황에서 여러 가지 이점을 제공한다. 검색의 이점, 맞춤형 콘텐츠에 대한 독자들의 이점 등을 제공할 수 있다. 여백을 남긴다는 건 독자 또는 시청자에게 상상력으로 빈 공간을 채우는 재미도 준다.
당신이 카페를 운영하는 사장님이라면, 종합 메뉴판을 만들기보다는 메뉴별 또는 스타일이나 요일별로 구분된 여러 개의 벌크(bulk)를 만들어서 고객에게 맞춤형으로 제공하는 게 콘텐츠적으로는 더 훌륭한 선택이다. 가령, 어린이들이 재미있어하는 '그림으로 이름 맞추기 카드 게임'같은 시스템이다. 모든 카드를 한데 모으면 하나의 종합 콘텐츠가 되고, 낱개로 나누면 다양하게 조합할 수 있다. 엄마와 함께 온 꼬마 손님에게 아메리카노는 그다지 좋은 선택지는 아닐 것이다. 초콜릿 우유라면 모를까.
인스타그램에는 1분 이상 가는 동영상을 업로드할 수 없다.(심지어 사진도 원래는 1장밖에 못 올렸다). 요즘 대세는 가벼운 콘텐츠다. 독자들이 부담 없이 볼 수 있어야 한다. 관심 가는 여행 관련 동영상을 보기 위해 1시간을 뺄 수 있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콘텐츠 시장에서 스토리텔링 기법이 시들한 이유는(예전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스토리를 풀어내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초입부에서 시선을 사로잡지 못하면 독자들은 끝까지 읽지 않고, 끝까지 시청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핵심 메시지만 보고 싶어 한다. 더 빠르고 더 정확한 정보, 그리고 나에게 맞춤화된 정보, 내가 궁금했던 정보, 쉽게 말해서 가려운 곳을 긁어줄 수 있는 무언가를 원한다.
무조건 짧고 간단하다고 해서 옳은 건 아니다. 짧지만 강력하고 임팩트 있게 전달해야 한다. 가독성은 항상 최우선 순위다. 초보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이 자주 하는 실수는 중간이 없이 너무 길거나 또는 너무 짧게 콘텐츠를 만드는 경우다. 작지만 속이 알차야 한다. 콘텐츠가 작은데 내용도 작다면 짧게 만들 이유가 없다.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을 2시간짜리로 만들면 어떻게 될까? 끝날 때쯤에는 관중석에 아이들이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성인용 영화를 15분짜리로 만들면 내용을 전달하기 어렵다. 간단하고 명료한 콘텐츠라는 건 핵심 메시지를 잘 전달하면서도 부담 없는 길이의 콘텐츠를 말한다. 딱 정해진 길이나 러닝타임이 있는 건 아니다. 사람들은 콘텐츠를 볼 때 '오... 이건 간단하고 명료한 콘텐츠군!'이라고 생각하면서 보지 않는다. 독자는 항상 어떤 느낌이나 분위기로 이해한다. '깔끔하네?' 라던지 '잘 만들었다' 정도다.
콘텐츠가 길면 그만큼 에너지도 분산된다. 인스타그램 광고용으로 1분짜리 동영상을 만들려면 1분 안에 핵심 내용 전부를 알차게 담아내야 한다. 모든 역량이 1분 안에 투입되는 것이다. 사실, 이 1분 안에서도 처음 15초 안에 느낌과 분위기가 결정되기 때문에 초반부에서 이끌어나가는 힘이 중요하다.
콘텐츠를 간단하고 명료하게 만들려면 처음 스타트를 아주 멋지게 끊어야 한다! 깔끔하고 잘 만든 콘텐츠는 시작 부분이 남다르다. 맛깔나게 시작된 콘텐츠는 굳이 내용이 길어질 필요도 없다. 고객은 벌써 구독 버튼을 누르고 있거나 머릿속에서 제품을 구매한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