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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시언 Feb 17. 2020

콘텐츠는 시간을 훔쳐야한다

훌륭한 콘텐츠의 조건

나는 과거 콘텐츠 조직에서 일할 때 경상북도 청도 지역의 소싸움을 주제로한 어린이용 극장판 애니메이션 제작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국내에 먼저 극장을 통해 오픈하고 반응이 좋다면 해외 수출까지 염두에 두고 있었다.


나는 당시 유럽권, 특히 스페인의 투우 경기에서 영감을 얻어 스페인과 합작으로 유럽 진출까지 계획에 두고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스페인의 투우와 청도 소싸움의 어떤 특징들을 잘 살리면, 한국의 청도도 알리고 스페인의 투우도 알릴 수 있겠다는 계산이었고, 재미있는 아이디어들도 많이 가지고 있었다. 어느정도 성과를 데이터로 보여줄 수 있다면, 스페인측을 합리적으로 설득할만한 충분한 계획이 있었다. 당시 코엑스에서 열린 페어에서 유럽 진출에 관심있는 업체들과 명함을 교환하고 합작으로 하는 방향도 고려했었던 기억이 난다. 만약 원본 콘텐츠가 약간의 성공을 거둘 수 있다면, 로봇 장난감을 파는건 시간 문제였다.(이건 추후에 여러가지 이유로 무산됐다)


이 애니메이션은 아시아권에 어울리는 주제였지만 어린이용 콘텐츠였으므로 아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만 있다면(이건 결국 엄마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이었지만), 국가는 문제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골치였던건, 애니메이션을 해외로 수출할 때 자막이나 더빙을 입혀야하는데, 자막은 그나마 괜찮지만 더빙으로는 한국 대사 특유의 감수성을 제대로 표현하기가 무척이나 어렵다는점이었다.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이 감수성이 있으면 얼마나 있겠나 싶겠지만, 실제론 매우 섬세하고 예민하게 더빙이 이뤄진다. 아이들은 그 자체로 예민하기 때문이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상을 여러개 수상하면서 연신 난리다. 나는 이 영화를 인상깊게 보았고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미국에서 성공하는건 아예 다른 일이다. 왜냐하면 미국인들은 자막을 보는것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은 더빙이 어느정도 가능하지만, 영화는 더빙이 어렵기 때문에 해외 콘텐츠의 경우에는 자막이 필요하다. 그런데 큰 시장일수록 자막의 보는것에 익숙하지 않다. 이건 자막을 넣는 기술의 문제라기 보다는 문화의 문제였다. 문화의 문제는 해결하기가 매우 어렵다. 



나는 어제도 넷플릭스를 보다가 잠들었다. 웹툰 원작의 이태원 클라쓰라는 재미있는 드라마도 넷플릭스로 보고 있다. 넷플릭스에는 정말 훌륭한 콘텐츠들이 많이 있으며 아마 앞으로도 더 늘어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인들은 자막 콘텐츠에 익숙하지만 해외 사용자들은 그렇지 않다는게 보편적인 생각이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유튜브나 넷플릭스 등의 스트리밍 서비스들로 인해 언어의 장벽이 허물어지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자막을 보는것에 거부감을 드러나지 않고 있다.


미국 주식 시장엔 애플, 구글 등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굵진한 회사들이 포진해있다. 하드웨어 제조업은 훌륭한 분야이지만, 세계의 흐름은 콘텐츠쪽으로 몰리고 있다. 여러분들이 만약 3년전에 넷플릭스에 투자했다면, 가만히 앉은 상태에서 지금은 2배의 자산을 가지게 됐을 것이다. 만약 10년전이었다면 40배를 불릴 수 있었다. 


지금 콘텐츠 시장은 OTT의 전쟁이다. 넷플릭스를 비롯해 유튜브, 애플, 아마존 등 기존 기업들도 OTT를 서비스하고 있으며 디즈니에서도 OTT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OTT는 당연히 전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콘텐츠 서비스이다. 웰메이드로 하나를 잘 만들고, 자막을 입히면 전세계에 유통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5G 시대가 열리면 콘텐츠 유통은 더욱 속도가 붙는다.





콘텐츠에서 국가의 경계와 언어의 장벽은 기술 발전으로 꽤 오래전부터 해결되었다. 그런데 자막의 장벽은 오래도록 허물어지지 않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내가 말하는 언어를 분석해서 자막을 자동으로 만들어주는 인공지능 소프트웨어도 있다. 


이제는 콘텐츠 춘추전국시대다. 콘텐츠가 넘쳐난다. 과거에는 콘텐츠가 부족해서 문제였지만 이제는 콘텐츠가 너무 많아서 문제다. 무엇을 봐야할지 고민하다가 시간이 흐른다. 

인타임이라는 영화가 있다. 매우 재미있는 영화인데 돈 대신 시간으로 거래를 한다는 설정의 재미있는 영화다. 나는 이 영화에서 나오는 시간(돈)이 콘텐츠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콘텐츠에서 중요한건 사람들의 시간을 뺏는 일이다. 다른 사람의 시간을 훔쳐야한다. 사람들의 시간을 훔치는 콘텐츠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훌륭한 콘텐츠는 시간을 지속적으로 뺏는다. 여러분들의 콘텐츠는 다른 사람의 시간을 얼마나 뺏을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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