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순간의 뜻

인생의 숲에서 일부를 보내는 것

by 남시언

사소한 아르바이트 같은 걸 몇 번 하긴 했었지만, 내가 처음 직장다운 직장을 다닌 건 19살 때였다. 실업계 고등학교 3학년 2학기 때는 현장실습이란 명목으로 이른 취업을 나가게 되는데 대체로 공장으로 간다. 내가 간 곳은 구미 1공단에 있던 OO 정공이었다. LCD 몰드프레임과 프린터에 들어가는 기어(gear), 반도체 메모리칩 따위를 만드는 곳이었다.

이 회사로 말할 것 같으면, 당시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에서 현장실습으로 갈 수 있는 회사 중에서는 가장 좋은 곳이었다. 교사로부터 똑똑한 학생들을 미리 추천받고 현장실습 업체 중 유일하게 학교에 직접 찾아와서 사전면접이란 걸 보기도 했다. 나는 공부를 안 했기 때문에(못 한 걸까, 안 할 걸까) 성적은 좋지 않았지만, 다행히 컴퓨터 자격증이 몇 개 있었던 까닭에 합격했다. 7월의 장맛비가 쏟아지던 날, 친구 4명과 함께 나는 구미 공장에 발을 들였다.

기숙사를 배정받고 작업복도 받았다. 첫날엔 팀 배정을 위한 공장장과의 대화를 하였다. 그는 나의 다크서클을 보고 ‘누구한테 맞았냐’는 농담을 던졌는데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유구무언 했다. 학업 성적보다도 자격증이 눈에 띄었는지 운 좋게도 품질관리팀에 소속되었다. 이 공장의 팀은 크게 품질관리팀과 공정팀으로 나뉜다. 공정은 기계를 앞에 두고 제품을 사출하는 업무고 품질관리는 말 그대로 사출한 제품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측정해서 불량을 최소화하는 일을 한다. 2교대였기 때문에 일주일은 주간에 일했고, 그다음 일주일은 야간에 일했다. 한 달에 네 번이나 밤낮이 바뀌었고 일주일에 70시간 넘게 일하는 강도 높은 일정이었지만, 불만은 없었다. 그땐 누구나 다 그렇게 일했으니까.

품질관리팀의 정확한 명칭은 QA(Quality Assurance)였는데 직원들은 발음상 QC(큐씨, Quality Control)라 불렀다. QC 업무는 복잡하고 힘들었지만, 신체적으로 힘든 건 아니었다. 품질관리 사무실은 제품의 정확한 측정을 위해 1년 365일 적정한 온도를 유지한다. 그래서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했다. 반대로 제품이 나오는 공정 쪽은 여름엔 죽을 만큼 덥고 겨울엔 적당하다. 기계가 24시간 뿜어내는 그 열기는 공정 직원의 옷을 하얀색으로 바꾼다. 쉴 틈 없이 흐르는 땀이 마르고 말라 소금이 된 것이다.

컴퓨터 자격증과 품질관리 실무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나는 귀빠지고 처음으로 버니어 캘리퍼스나 마이크로미터 같은 장비를 접했고 사용법을 배웠다. 학교에서는 그림자도 못 본 것들이다. 내가 처음 수행한 업무는 자체 제작하는 40개의 기어(gear) 종류를 외우는 것이었다. 나는 출퇴근을 찍고, 초과근무표를 작성하고, 각종 서류 작업과 보고서를 쓰기도 했지만, 주로 하는 일은 시간별로 제품의 치수를 재서 테스트하는 것이었다.

야간 근무는 1.5배를 받았다. 월급은 100만 원 정도로 기억하는데, 이건 큰돈이다. 담배 한 갑이 2,000원이고 최저 시급이 3,100원이던 시절이다. 무엇보다 나는 19살이었다! 시급 1,800원 받고 아르바이트할 때를 생각하면 눈물이 날 정도로 발전한 것이다. 기숙사와 사무실만 오가는 생활을 하다 보니 돈은 자연스럽게 모였다. 돈 쓸 시간도 없었고 쓸 데도 없었다. 이때 모은 돈으로 대학교 등록금도 내고 생활비로도 썼다. 나는 19살 때 가정으로부터 완벽하게 독립했다. 회사에는 나처럼 실습 나온 동갑내기 친구들이 많았다. 그들과 기숙사에서 부대끼고, 같이 술도 먹고, 어울려 담배도 피우고, 회사 욕도 하면서 지냈다. 술 취해서 우르르 몰려갔던 노래방이 참 재밌었던 기억이 난다.

2016년 5월, 11년 만에 다시 구미에 발을 들였다. 지나친 적은 있어도 구미로 들어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자차를 타고 넥타이를 맸다. 그사이에 난 강사가 됐다. 19살 때의 나는 30살의 내가 이런 모습일 거라곤 상상조차 못 했다. 그사이 많은 일들이 있었다. 1년 동안 책 한 권 안 읽던 19살짜리한테, 너는 10년 뒤에 책 3권을 낸 작가가 될 거라고 예언해준다면 ‘도를 아십니까’로 오해받기 딱 좋다.

나는 나중의 내가 어떤 일을 하게 될지 몰랐다. 되고 싶은 것도 딱히 없었고 롤모델도 없었다. 이상향도 마찬가지다. 닮고싶은 인물도 있을 리 만무다. 강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어쩌다가 이런 길을 걸어오게 됐는지 생각해봤다. 모든 게 우연 같은 필연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시나리오가 있다면, 20대의 내 삶은 하이라이트 부분의 반전일 것이다. 아주 작고 사소한 점들이 모이고 모여 하나의 선을 이루고 그림이 됐다.

공장에서 일할 땐 1시간 지났다고 생각하고 시계를 보면 고작 10분이 흘러있었다. 우리는 시간은 진짜 안 가는데 날짜는 빨리 간다는 얘기를 자주 했다. 땅에 떨어진 100원짜리 동전을 줍는 일조차도 나중에 어떤 기회로 연결될지 모른다. 시간은 느리지만 지나고 보면 순간이다. 그래서 반복되는 매 순간이 의미가 있다. 1초, 1분, 1시간, 하루…. 한 그루의 나무, 심지어 잡초도 숲의 일부다. 인생이라는 숲에서 우리는 어떤 일부를 보내고 있는가?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쉽게 얻을 수 있다는 착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