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수첩을 쓰는 이유

찾을 수 없는 어떤 물건처럼 기억도 그렇다

by 남시언

회사를 그만두고 꿈꿨던 내 미래의 모습은 글쓰고 강의하고 여행하면서 사는 삶이었다. 지금은 프리랜서 작가와 강사로 여러 가지 일들을 하는 중이다. 지인들은 내 블로그와 페이스북만 보고서는 “한 달에 천만 원 정도 벌지?”라며 우스갯소리를 하는데, 한 달에 백만 원도 못 버는 경우도 있으니 그들의 의견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프리랜서는 수입이 들쭉날쭉하므로 딱히 한 달에 얼마를 번다고 이야기할 처지가 아니고 바쁠 때는 엄청 바쁘지만, 또 한가할 때는 너무 한가해서 사람을 미치게 한다. 고정수입을 가늠할 수 없는 특성상 적금 같은 뭔가 미래 계획적인 것들과는 동떨어진 부분도 많다.


사정이 이렇지만 편안하게 생각해보면,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어느 정도는 처음에 생각했던 것에 근접한 인생을 살아가는 중이기도 하다. 작년까지는 강연 일이 많았는데 올해는 글 쓰는 일이 많아졌다. 고정으로 기고하는 기고문들과 잡지에 송고하는 칼럼, 맛집 소개 글, 계간지에 넣는 글도 쓰고 1년에 2번 나오는 매거진에 글을 쓰기도 한다. 경북여행리포터로 여행 후기를 생생하게 전달해야 하는 글도 쓰고 경북도청에 송고하는 원고도 작성한다. 개인 블로그에 올릴 포스트와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미디어에 올릴 글도 빠질 수 없다. 이외에도 비고정적으로 들어오는 칼럼 요청이나 대학생들에게 전달될 수필 글을 쓰기도 한다. 이렇듯 여러 개의 글을 쓰다 보니 정작 나 자신의 책 원고는 요즘 거의 쓰지 못하고 있다. 글쓰기 에너지도 한계가 있어서 취재를 다녀오고 원고를 쓰고 하다 보면 어느덧 녹초가 되어 머리를 부여잡으며 드러눕기 일쑤다.


내 글쓰기 작업은 한 곳에 쓰는 글이 아니라 여러 곳에 각기 다른 일정에 맞춰 원고를 보내야 하기 때문에 일정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또 글을 쓰려면 소재가 있어야 하는 법인데, 갖고 있는 소재는 무한하지 않기 때문에 글을 쓰려면 계속해서 소재를 찾아야한다. 결국 내가 하는 글쓰기라는 건 소재를 찾는 것에서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글 쓰는 삶이란 것도 평생 소재를 발굴하고 새로운 시각과 형식으로 자신만의 의견을 담아 멈추지 않고 콘텐츠화하는 일이리라.


나는 글을 쓸 목적으로 취재를 나가는 경우가 잦다. 신문사 기자도 아닌데 취재를 한다고 하면 좀 웃기지만 인터뷰도 하고 사진도 찍는 등의 일을 한다. 이 취재를 나갈 때 수첩을 이용한다. 포켓 사이즈용 두꺼운 수첩인데 문방구에서 골라잡은 1,500원짜리다. 정신없는 현장에서 빠르게 메모하는데 제격이다. 필요하면 주머니에 넣었다 뺐다 할 수 있다. 예전에는 아이폰 녹음 기능을 활용해서 녹취록을 만들어 온 다음 그것을 들으며 글을 썼는데, 이게 아무래도 비효율적인게, 나중에 녹취록을 들으면서 중요한 내용을 다시 옮겨적어야 하는 까닭이다. 애초에 수첩에다가 요약해서 적을 것을 녹취록 → 중요 내용 옮겨적기로 이어지면서 두 번 일하는 꼴이므로 수첩이 훨씬 낫다.


수첩에다가는 현장에서 중요하다 싶은건 모조리, 그리고 빠르게 적어야 한다. 사실관계 뿐만 아니라 내가 느끼는 감성적인 느낌도 포함한다. 또한, 사람이 이야기하는 게 메모보다 빠르므로 모든 걸 기록할 순 없고 단어나 키워드 형태로 날려써야 한다. 날려쓰다 보면 나중에 볼 때 자신의 필기체도 알아보기 힘들 때가 있는데 여러 번 보다 보면 또 기억이 난다. 현장에서 증거를 수집한 이 수첩에 있는 내용이 내 글쓰기의 시작이며 소재의 근본이다.


보통의 사람들은(실제 전문 블로거들이나 작가들도) 현장에서 메모하는 경우가 흔치 않다. 실컷 현장을 다녀왔는데 나중에 글을 쓸려고 보면 기억이 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수첩은 큰 도움이 된다. 집 어딘가에는 분명히 있는데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는 어떤 물건처럼 기억도 그렇다. 뇌 속엔 분명히 있는데 아무리 기억해내려 해도, 기억하려 하면 할수록 기억이 나지 않을 때가 잦다면 수첩을 꼭 활용해보길 권하고 싶다.


좋은 글을 쓰는 법에 대해서는 수많은 책과 인터넷 검색결과물이 있다. 하지만 현장의 생생함을 놓치지 않고 중요한 내용과 하고 싶은 이야기가 빠짐없이 들어간 글이야말로 가장 적합한 텍스트라고 생각한다.


이 글은 수첩을 보고 쓰는 글은 아니고 메모해두었던 몇 가지 생각들을 버무린 것이다. 지금은 새벽 4시 55분이고, 읽는데 몇 분 정도밖에 소요되지 않는 이 글을 쓴지도 벌써 1시간 30분이 지났다. 창밖으로 날이 밝아오는 게 보인다. 곧 해가 뜰 것이다. 동창이 밝아오니 새가 지저귀는데 뻐꾸기인지 뻐꾹 뻐꾹 거리는 게 참 듣기 좋다. 요즘처럼 더운 여름에는 수평선이 펼쳐진 바다를 앞에 두고 시원한 그늘 밑에서 느긋하게 글을 쓰는 상상을 한다. 파도 소리 들으면서, 바람 소리 들으면서, 차가운 술 한 잔 옆에 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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