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은 게 돈이라면 얻은 건 추억이다.
지역에서 작품 활동을 하며 프리랜서로 일하다 보면 참 많은 이들을 알게된다. 모두 비슷하지만 각기 개성 있는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다. 이 동네에는 지역을 위해,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위해 일하는 뛰어난 인물들이 여기저기에 있다. 강의를 하면 하루에 100만 원도 벌고 200만 원도 버는 사람이 그 하루 치 강의료를 월급으로 받는 축이 대표적이다. 그들이 돈 욕심이 없는 부처 같은 인물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돈 이상가는 가치를 위해 살아가는 것이다.
내 친구는 나에게 돈 욕심이 없다고 뭐라 한다. 대도시에 거주하면서 조금만 활동적으로 움직이면 떼돈 벌 수 있는데 왜 지역에서 개고생하냐는 논지다. 떼돈까지는 아니더라도 일부는 맞는 이야기 같기도 한데, 나라고 왜 돈 욕심이 없겠는가? 하지만 나는 돈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찾고자 한다. 그간 4시간 5시간씩 잠을 자면서 몇 년을 보냈더니 겨우 입에 풀칠할 정도는 됐다. 강력하게 압축된 시간을 보내면서 뭔가를 배웠고 경험치를 쌓았다. 돌이켜보니 많지는 않지만, 돈은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더 부유해지고 싶은 생각이 없는 건 아니지만, 당장 눈앞에 돈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고 믿으며 일했다. 잃은 게 돈이라면 얻은 건 추억이다.
다행스러운 점은 요즘 일감이 꽤 들어온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진 것 같고, 평판도 좋게 나 있는 듯하다. 최근 몇 달간은 정말 바쁘게 지냈다. 연봉 4천을 받다가 퇴직하고 한동안 수입이 없어 보니까 천국과 지옥이 따로 있는 게 아니더라. 프리랜서 일을 시작하면서 직장인일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근데 현실이 됐다. 나는 내가 100% 통제할 수 있는 일들을 하면서 스스로의 힘으로 수입구조를 만들었다. 그래서 이 돈의 가치는 땅에 떨어진 돈과는 차원이 다르다.
퇴직하고 한동안은 별로 할 일도 없었고 하고 싶은 일도 없었다. 매일 넥타이를 매고 다니던 사람이 백수로 전락하는 건 하루면 충분하다. 퇴직금이나 까먹으면서 탱자탱자 놀기나 했다. 돈 대신 자유를 택한 ‘능동적 빈자’를 자처하면서 남는 시간에 해외와 국내 구석구석을 여행했다. 평일에 조조 영화도 보고 책도 보고 낮잠도 잤다. 대책 없이 긁은 신용카드 전표는 빚이 됐다. 웃기게도 별로 걱정스럽진 않았다. 혼자서 무작정 기차를 타고 떠나보기도 하고 바다가 보고 싶으면 바다로, 단풍이 보고 싶으면 산으로 향했다. 특별한 목적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냥 그렇게 하고 싶어서 했다. ‘하고 싶었다’는게 행동의 근거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사람들은 ‘하고 싶어서 했다’는 걸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이 직관적 행동 과정에서 얻은 경험과 생각들을 토대로 글을 썼고, 다음으로 ‘하고 싶은’일들을 해나갔다. 경제적인 관점에서 이 시간은 낭비와 손해에 해당하겠지만, 전체적인 관점에서 결과론적으로 보면 이득이 됐다.
별 계획도 없이 끌리는 대로, 그리고 닥치는 대로 사는 나 같은 사람은 신랑감으로서는 꼴찌 등급이 아닐까 싶다. 사람들은 내 통장잔고 숫자 개수도 모르면서 직장인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내 이미지에 낙인을 찍는다. 지금도 달력과 Todolist에는 일정이 빼곡하게 들어있어서 징그럽기까지 하다. 지금은 오전 11시이고 이 글은 새벽 5시부터 쓰고 있다. 이런 식이 아니면 요즘 도통 글 쓸 짬이 안 난다. 11월부터는 일을 조금 거절하는 한이 있더라도 여유 시간을 좀 더 확보해서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더 많이 해 볼 생각이다.
종종 기업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는다. 콘텐츠 기획이나 제작, 큐레이션 담당도 있고 글쓰기나 아이디어를 요구하는 직종도 있다. 심지어 개발도상국에 가서 몇 년 동안 콘텐츠 교육을 담당하는 업무도 있었다. 취업불황 시대를 살아가면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는 건 기분 좋은 일이지만, 월급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하는 일 자체가 마음에 드는 게 없어서 거절했다. 나는 직장에 들어갈 마음이 없는 것이 아니고 그렇다고 당장 직장에 들어갈 마음이 있는 것도 아닌, 어중간하지만 유연한 상태다. 소속은 어떻든 관계없다. 중요한 건 내가 하는 일이니까. 좋아하는 일로 먹고살면서 직관을 따르는 삶이 내 인생 목표다. 구체적으로 좋아하는 일이 무엇이냐고 명확하게 묻는다면,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 내 성향은 갈대 같아서 계속 바뀐다. 내 마음을 지금 당장 규정하고 싶지 않다.
돈보다 훨씬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아니, 믿고 싶다. 사람마다 가치관은 다르기 마련이므로 내 생각을 강요할 마음은 없다. 그들은 그렇게 살고 나는 나대로 살면 그만이다. 몇 년간 많은 일을 벌였고 또 했다. 결과물들은 이제야 세상에 나오고 있다. 나는 여행하고 글을 쓰며 강의하고, 콘텐츠나 문화 상품을 기획해서 만들고(크리에이티브), 어떤 소재를 나만의 시각으로 재해석해서 대중에게 소개하는(큐레이션) 일들을 한다. 뭔가 일을 하긴 하는데 종류가 다양해서 어떤 큰 범주에서 한 단어로 요약하는 게 쉽지 않다. 그래서 처음 만나는 사람이 “무슨 일 하세요?”라고 물을 때면 항상 진땀을 뺀다. 이 일들은 모두 내가 좋아하는 일이고 현재로선 성과도 좋은 편이다. 살다 보면,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았는데도 이상하게 잘 풀리는 일이 있다. 슬쩍 손만 댔는데 대박이 터지고 박수를 받는, 어려운 일도 아니라서 자신도 의심스러울 만큼 잘 풀리는 경우. 지금 하는 일들이 내겐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