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불교에서는 입춘이 되면 부적을 붙인다. 입춘과 입추에 붙이는데 흔히 '입춘부'와 '입추부'라 부른다. 집 입구란 입구에는 다 붙이는데 대문과 현관문 높은 곳에 붙이는게 일반적이다. 입춘이라고 아무때나 붙이는건 아니고 정해진 시간이 있다. 이왕이면 시간에 맞춰 부적을 붙여야 길하다. 올해는 새벽 시간대였다. 할머니는 독실한 불교신자인 까닭에 여러가지 행사를 소흘히하지 않는 분이다. 높은 곳에 붙여야하는 특성상 젊은이가 꼭 필요해서 내가 그 임무를 맡고 밤 늦게 할머니집으로 향했다.
추위에 떨며 풀을 바르고 시간에 맞춰 정성껏 부적을 붙였다. 한 곳만 붙이는게 아니라 여러 곳에 붙여야 하니 이때만큼은 서둘러야한다. 부적을 모두 붙이고 방에서 쉬고 있는데 할머니가 옆에 앉았다.
"니는 만나는 아가씨 있나?"
할머니는 흥미로운 눈빛으로 물었다.
"없는데"
"근데 아가씨도 잘 만나야지... 대나마나 만나면 꼬라지 안된데이"
지금껏 저 말을 못해도 100번은 넘게 들었다. 할머니는 나를 위로하는 말을 했다. 혹시라도 내가 상처받을까봐 미리 연고를 바른 것이다. 자기 앞가림은 충분히 할만한 서른 넘은 나이지만, 할머니 앞에서는 여전히 어린애인가보다. 내심 기대하는 눈치에 실망감을 준 것 같아 마음이 아팠지만 사실이 그런걸 어쩌겠나.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만족시키기 위해서(그것이 설령 사랑하는 할머니라고 할지라도) 억지로 뭔가를 할 순 없다.
집으로 되돌아오는 길에 붙였던 부적을 다시 살폈다. 찬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부적을 보니 행복했다. 이거면 됐지 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