덫칠하는 화가처럼
꽤 좋아졌다. 예전에 비하면 많이 좋아졌다. 헤어진 애인은 거의 생각나지 않는다. 이제 함께했던 추억과 물건들을 쳐다봐도 그저 초연하다. 돌아가신 부모님도 종종 그리울 때를 빼면 아무렇지도 않다. 세월은 모든걸 해결하고 나는 그 흐름속에 몸을 푹 담근채 물결따라 흘러간다.
이별의 아픔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 부모님 장례를 치러도 한달만 지나면 다시 희희낙낙거리며 살 수 있다. 미칠듯이 사랑해서 단 1분 1초도 떨어지기 싫었던 연인조차 눈에서 멀이지니 떠오르지 않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고 흑백사진처럼 빛바랜다. 그 빈공간엔 새로운 경험과 추억이 들어찬다. 밑그림에 새로운 그림을 덫칠하는 화가처럼 우리는 시간 속에서 미술가가 된다.
열심히 노력하고 살아도 운이 따르지 않으면 모든게 물거품이 될 때가 있다. 우리는 종종 실패하고 때로는 성공하면서 살아간다. 그것이 일이든 사업이든, 심지어 사랑이든간에. 노력처럼 사랑도 이따금 배신한다.하지만 모든 부분에서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알고있다면, 여러가지 실패들도 세월의 미술가에 맡겨두면 그만이다. 우리 몸에 내재된 뛰어난 미술가는 종신고용으로 절대 배신하는 법이 없다.
신나는 노래를 들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반대로 발라드를 들으면 눈물이 난다. 하지만 슬픈 음악을 들으면서 마음을 치유해야할 때도 있기 마련이다. 우리를 행복하게해주는건 도처에 널려있다. 당장 눈 앞의 슬픈 일 때문에 주위의 행복을 잊고 사는건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