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효율적이고 불편한 족쇄
나는 1월과 2월에 손가락 빨면서 완벽한 백수가 되는데 3월부터 좀 바빠졌다. 정신없이 살다보니까 3,200번째 글을 놓치고 말았다. 지금 카운터는 3,235다. 큰 실수다. 지금 확인해보니 정확하게 3월 6일자로 3,200번째 글을 썼다. 뭔가를 읽는건 재미있는 경험이다. 글을 쓰는건 더욱 재밌다. 글쓰기의 재미를 느낀 사람이라면 평생동안 펜을 놓지 못할 것이다. 글은 중독이다.
사람들은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시작하지 않는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기록하지 않는다. 생각은 흘러가는 물처럼 사라져버린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구조화하는데 어려움을 느낀다. A4 한 장짜리 일기 하나 못쓰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읽는데 5분이 걸리는 글은 50분 이상의 시간을 필요로한다. 그래서 글은 효율적이지 않고 불편하다.
글을 읽는건 다수지만, 글을 쓰는건 언제나 소수다. 요즘 젊은이들은 글과는 동떨어진 삶을 산다. 글 보다는 사진, 사진보다는 동영상, 동영상보다는 4D처럼 화려하고 오감을 직접 자극하는 것에 익숙하다. 발전한 매체일수록 기억하기는 더 어려워진다. 밤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를 읖조리는 사람은 있어도 1년 전에 봤던 4D 영화를 떠올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점점 바보가 된다. 겉모습은 화려한데 머리는 텅 빈 깡통이나 다름없는 사람들과의 대화는 불쾌하다. 취업준비생이 구직을 할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자기소개서 샘플' 구하기란 사실은 아이러니다.
옛날처럼 문맹인이 거의 없는 오늘날, 글은 누구나 쉽게 제작할 수 있는 콘텐츠다. 글은 조용하지만 오래간다. 글은 가볍지만 어디에나 어울린다. 무엇과도 연결할 수 있고 어디서나 반드시 쓰인다. 동영상 없는 미술관은 가도 글 없는 미술관은 파리가 날리는 법이다. 사진을 엄청 잘 찍고 동영상을 완벽하게 만들어도 텍스트없이 그것을 설명하는데는 한계가 있다. 글은 가장 기초이며 기본이다. 기본기가 탄탄하면, 콘텐츠를 만드는건 쉬워진다.
글쓰기를 제대로 해보지 않은 사람은 자신이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한다. 마치 흡연자가 마음만 먹으면 당장 담배를 끊고, 불량학생이 마음만 먹으면 전교 1등하는건 누워서 떡먹기라는 생각과 같다. 하지만 막상 해보면 현실은 다르다는걸 알게된다. 글쓰기는 농사나 악기 연주와 비슷해서 하루만에 어떻게 되진 않는다. 무식한 사람일수록 글을 얕잡아본다. 서른 넘은 내 친구 블로그 글에는 구어체와 경어체가 마구 섞여있다. '오늘은 어디를 여행했다. 가보니까 너무 멋있었어요.' 뭐 대충 이런식이다. 자기가 쓴 글을 읽어보지도 않거나 자신이 다녀온 곳에 대해 짤막한 글도 못써서 여기저기서 복사해왔거나 시력을 잃었거나 셋 중 하나다.
3,200개의 글을 쓴 시점에서 내 옛날 글을 읽어보면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어진다. 그때의 글은 몹시 거칠고 투박하며 엉터리다. 하지만 그때의 감정과 패기, 열정, 생각들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이므로 수정하고 싶진 않다. 지금은 아무리 글을 써도 그 당시의 문장이 나오질 않는다.
돈만 주면 DSLR 카메라를 장만할 수 있지만, 작문 능력은 돈으로 못 산다. 글쓰는 사람이 점점 줄어든다는건 바꿔말하면 더 많은 기회와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가벼운 글 한 편이 수 십만원을 호가한다는걸 사람들은 잘 모른다. 등단한 소설가나 시인, 기자들만 쓰던 글을 이제는 누구나 쓸 수 있다. 글이 우리 곁에 있다. 앞으로 글쟁이는 콘텐츠 매체와 만나서 더 유명해지고 더 많은 이득을 챙겨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