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바보상자를 빼자

'내 인생은 왜 이래?'는 핑계

by 남시언

나는 TV를 보지 않는다. 집에 TV 자체가 없다. TV와 연결되는 동축케이블이 어딘가에 덩그러니 남아있을 뿐이다. TV를 안본지 10년이 넘었지만 지금껏 불편하거나 아쉽다고 느낀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게 신기할 따름이다.


바보상자라 불리는 TV를 보지않게 된 후 나는 압축된 시간을 보냈고, 빠르게 성장했다. 28살에 책 3권을 낸 작가가 된건 모두 TV볼 시간에 다른 일을 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나이를 기준으로 그 사람의 이미지를 그린다. 가령 상대방이 20살이라고 했을 때 연령을 기준으로 그 사람의 성향이나 지식 수준, 업무 능력 등을 판단한다. 이것은 예전부터 이어진, 말하자면 오래된 DNA처럼 거부할 수 없고, 두뇌에 프로그래밍된 루틴처럼 작동한다.


과거에는 나이가 곧 그 사람의 능력과 거의 일치했다. 같은 교육을 받고 같은 문화권을 공유하면서 살았기 때문이다. 농업이나 산업시대까지만하더라도 경력이 많은 인물은(나이가 많은 것과 같은 의미로) 좀 더 뛰어난 기술과 많은 지식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상황이 180도 다르다. 그 사람이 어떤 인생을 어떻게 살았는지가 중요하다. 우리는 이제 같은 교육을 받지않고 같은 공부를 하지 않으며, 같은 문화권을 100% 공유하지 않는다. 똑같은 30살이라도 하루에 잠을 12시간씩 잤던 사람과 하루에 잠을 4시간씩 자면서 열심히 공부한 사람의 능력은 차이난다. 나이와 능력이 일치하지 않는 세상이다.


나는 남들이 TV를 보며 효율성없는 시간을 보낼 때 글을 쓰거나 책을 읽고, 잠을 자거나 또는 다른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하는 등 TV보다 훨씬 매력적인 일들을 해왔다. 맛있는 음식이나 술을 마시고 코를 드르렁 골면서 잠을 잘 때도 있었다. 밤 안개 자욱할 때 동네를 산책하거나 운동장 벤치에 멍하니 앉아서 보름달을 보며 한 두 시간 생각에 빠질 때도 있었다. 그 무엇을 하더라도 TV를 보는 것보다는 생산적이라는게 내 의견이다.


TV가 바보상자라고 불리는 가장 확실한 이유는 편안하기 때문이다. TV는 생각없이 그냥 본다. 뭔가를 할 필요도 없고 이마를 부여잡고 곰곰히 생각해야할 주제 따위는 나오지 않는다. 그냥 본다. 노력도 필요없고 생각도 필요없는 상자를 벗어나지 못한채, 그렇게 시간은 흘러간다. 몇 년이 지나면 열심히 노력한 친구의 사회적 인정과 뛰어난 성과를 부러움과 시기질투의 눈으로 봐야한다.


요즘 젊은이들은 깊은 생각을 못한다고 한다. 조금만 복잡한 주제가 나오면 금세 포기해버리고 공부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조금만 어려운 주제를 만나면 TV로 도망가서 흥청망청 시간을 때우다가 결국엔 아무것도 남는게 없는 하루가 마무리되는 것이다. '내 인생은 왜 이래?'는 핑계다. 불편함과 어려움을 감수하고 편안함을 포기하지 못한다면, 1년전에 말했던 '내 인생은 왜 이래?'를 1년 후에 그대로 반복하고 있는 자신을 만나게 된다.


인생에서 바보상자를 빼버리면 낭비되는 시간을 잡을 수 있다. 하루에 1시간씩 TV를 본다고 가정하면, 1년에 365시간을 다른 일에 쓸 수 있다. 사실은 하루에 1시간 이상 TV를 보는데 사용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대충 500시간 이상을 절약할 수 있다. 시간을 절약한다는건 돈을 더 벌거나 다양한 분야에 자신의 재능을 쏟을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TV를 보면서 휴식을 취하는 것 자체가 나쁜 일은 아니다. 더군다나 TV 광고에는 참고할만한 아이디어나 마케팅 관련 인사이트가 담겨있다. 하지만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많다. TV 없이도 휴식은 얼마든지 취할 수 있다. 그 시간에 잠을 잔다면 좀 더 개운한 아침을 맞고 동트기 전에 일어나서 책 한 꼭지를 읽은 다음 출근하는 것도 현실이 된다.


사람들은 이야깃거리가 없어지면 TV에서 본 어떤 이슈를 대화 주제로 삼는다. '누가 이혼했다더라' '누가 누구랑 연애를 한다' '어떤 연애인이 어쩌고 저쩌고'... 나는 TV를 보지 않으므로 이런 대화에 낄 수가 없지만 전혀 불편하지 않다.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를 할 때 마다 '나는 저 사람보다는 좀 더 나은 삶을 살고 있구나'라는 사실을 재확인할 뿐이다.


정말로 바보 취급을 받고싶지 않다면 인생에서 바보상자를 빼자. TV 프로그램이 무척 재미있겠지만 TV보다 더 재미있는 일들은 얼마든지 있다. 책이나 신문을 읽으면서 새로운 지식을 쌓는건 재미있는 일인 동시에 유익한 일이다. 운동을 하거나 동네를 산책하면 건강과 두뇌를 재충전하는데 도움이 된다. 누군가를 만나서 대화를 나눈다면 인간관계에 대해 좀 더 수월함을 가질 수 있을 것이고, 잠을 잔다면 피로라도 풀린다. 그 무엇을 하더라도 멍청하게 TV를 보는 것보다는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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