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문학 대가 J.M. 쿳시의 신작 <폴란드인>

일상과 사랑, 또는 구원의 저편

by 사장님의 세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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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M. 쿳시의 <폴란드인>을 도서관 신간 코너에서 발견하자마자 잽싸게 낚아챘다.

가지고 돌아와서 가족에게 양해를 구하곤 침대에 누워서 2시간 반동안 다 읽어 내려갔다.


쿳시의 소설 중에 짧은 편에 속하고, 독서시간도 가장 짧았지만

소설의 화자인 베아트리스의 영혼 속에 잠시 살았다가 돌아온 듯한,

진한 여운과 뭔지 모를 감흥에 사로잡히는 마법 같은 소설이었다.


그리고 지금 느끼는 것이지만 진한 격조 같은 게 있는 소설이다.

쿳시의 문장은 참 점잖고도 냉철하다.

그의 묘사는 완벽한데, 항상 대가들의 영화에서 보이는 경제적인 쇼트와 많이 닮아 있다. 하지만 사건의 진행과 완급조절, 과감한 생략이 특징이며, 장황함과는 거리가 멀다.


특히 노년의 사랑이 주제이기 때문에 소설을 읽고 나서

오래전에 봤던 안토니오니 감독의 <구름 저편에>가 생각났다.

나는 이 영화에서 존 말코비치보다는 피터 웰러의 여피 연기가 인상적이었는데,

비톨트의 외모는 간달프와 닮았다는 힌트가 있음에도 피터 웰러가 어울리지 않을까 상상했다.


그 분위기와 고급스러운 감정선들, 독자에게 판단과 사색을 유보하는 능력.

무엇보다 현실 속에 속해 있는 사람들의 모습들...

우리가 그들이었다면, 그들이 우리였다면...


우리 시대 소설가라고 치면 많이들 손꼽을 수 있겠지만

만약에 똑같은 주제로 무라카미 하루키가 이런 내용을 묘사한다고 한다면, 중간에 책을 내던져버릴지도 모른다. 하루키는 여성의 심리에 대해선 쿳시보다 한 수 아래인 것이다.


<추락> 이후에 쿳시 소설을 섭렵하면서 같이 나이 들어간 느낌이다.

거의 20년에 걸쳐서 신작들이 소개되면 반가이 읽고 또 읽지 못한 책도 있긴 했지만

어느 순간 되짚어보면, J.M. 쿳시만큼


그 밀도와 완성도에서 꾸준함을 유지하며 책을 써 내려간 현대의 작가가 있나 싶다.

그의 전담 번역가 왕은철의 번역도 반갑다.


<폴란드인>은 소품처럼 가볍게 쓰인 것 같지만, 일단 구조가 완벽하다. 이 스크립트 그대로 영화로 만들어도 될 것이다. 완전히 다른 성정을 가진 여성과 정보를 일부로 적게 보여주며 등장한 70대 노인 비톨트.


그들이 자신들의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소통을 시도하지만,

번역 중 손실은 특히 사랑을 받는 여성의 일상에 어떤 변화도 일으키지 못하는 것 같다.


어쩌면 그것은 당연한 것이다.

우리들은 나이 들면서 보수적으로 변하며 무엇에도 침범당하지 않을 일상성을 일시적인 충동보다 더 우선시하는 방향으로 진화한 것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 속에서 그러한 일상은 점점 소설적인 일상으로 서서히 변화해 간다.


그걸 따라가면서 되새김해 보는 그런 시간들이 중요하게 느껴지는 그런 소설이다. 그리고 책을 덮자마자 다시 첫 페이지로 돌아가게 만드는 종류의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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