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발탄>, 이범선 원작, 유현목 감독, 1961
1959년 현대문학에 발표된 이범선의 단편 <오발탄>을 영화로 옮겨 1961년에 완성하지만 지독한 리얼리즘으로 당시 검열에 걸려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1963년 샌프란시스코 영화제 초정을 통해 알려진 영화 <오발탄>은, 60년대 한국 영화 황금기를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다.
단편 소설이 실향민으로 해방촌 판자촌에 살고 있는 대가족의 가장, 장남 철호의 시선을 통해 진행되고 있다면, 영화 <오발탄>은 철호의 비중보다 철호의 동생이자, 군인 출신으로 퇴역한 하사이지만 퇴역 후 2년 동안 일자리를 찾지 못해 전우들과 술 마시며 시간을 때우는 영호의 비중이 더 크게 와닿는데,
영호의 서사에 새로운 인물이 추가되고, 양공주로 묘사되는 여동생 명숙에게도 부상당한 군인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있다는 서사를 덧붙이고,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인 영호의 도주 장면의 무시무시한 시퀀스등이 덧붙여져서 원작보다 풍성한 결과물을 도출한 게 아닌가 싶다.
영화를 보고 원작을 본다면 뭔가 밋밋한 느낌이 들 것 같다.
이 당시 영화의 연기에 대해서는 크게 할 말은 없지만, 특이한 것은 이 영화에서 철호와 영호는 마치 한 사람이 아닌가?, 철호의 또 다른 자아로 영호를 들여다봐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망령 같은 "가자"를 외치는 노모 , 치과 치료비 걱정 때문에 사랑니 고통을 참으며 하루하루 보잘것없지만 안정된 직장에 출근하는 철호는 몸과 마음이 지쳐서, 동생들의 이탈과 변모에 신경을 쓸 마음의 여력이 없다. 너무나 피곤하고 지치고 할 말도 없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이지만 입에 풀칠하기에도 부족한 돈 때문에 소비에서 거세된 음울한 망령처럼 도시를 배회하는 그림자 같은 존재인 철호.
반면, 영호는 출세를 위해 영화사에 스카우트되어 적당한 연기를 할 기회를 잡을 수 있음에도, 자신의 상처를 상업화하라는 조감독의 의견에 마지막 남은 군인으로서 자존심을 내세우며 스스로 뿌리치면서, 극단적인 방법의 타계책을 획책하는데,
철호는 영호의 비윤리적 방식을 비난하고, 영호는 철호의 우유부단함을 비난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둘은 모두 실패하고, 자신에게 소중한 가치를 손아귀에서 내 던지고마는 자신들을 묵묵히 관조할 뿐이다.
명숙이 미군에게 자신을 판 대가로 번 돈은 철호의 아내의 병원비로 쓰여야 할 것이나 결국 철호의 사랑니 치료비로 쓰인다.
극 마지막에 철호가 서울의 밤거리를 비틀거리며 택시에서 입에서 넘치는 피를 흘리며 마치 술주정하는 사람처럼 허우적 대는 모습이 빵빵거리는 경적 소리와 함께 날카롭게 기억에 남아 거칠 거린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우리들은 잘못된 방향으로 목표를 이탈한 조물주의 오발탄 같은 존재라는 말은, 자신의 의지로 태어나지 못한 인간들, 보살핌이나 관심 없이 왁작거리며 도시를 목적 없이 배회하는 이들의 한탄을 자아내는 허무적인 발언이긴 하지만, 그 자체로 목표지향적이며, 인생의 의미를 가두는 푸념으로 들리기도 하다. 하지만 당시에는 굳은 신념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전후의 강압적인 상황이란 그런 신념과 공격성을 내재하게끔 만들었다.
철호와 영호 모두는 자신이 욕망하는 것을 깨닫지 못하거나, 깨닫더라도 너무 늦게 알게 되어 실수를 저지르는 도시인들이다. 이 도시에선 신경 써야 할 일이 너무 많기도 하지만, 자신의 노동의 효율이 너무 떨어지는 것이다.
<오발탄>은 영화가 끝이나도 도무지 끝이 나지 않은 씁쓸함을 안겨주는 종류의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