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선 불가능한 기획(?)

<버릴 수 없는 티셔츠>, 쓰즈키 교이치 엮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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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https://www.instagram.com/p/DMPdx-VzYR6/


사람들은 누가 무슨 옷을 입었는지 대충 관심이 없다.

나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내가 그런 관심일랑 거둬들이기로 작정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대도시의 삶은 우리에게 무관심과 적당한 거리 두기를 학습시킨 채로 우리를 움직여 왔다.


하지만, 누군가가 절대 버릴 수 없는 티셔츠에 관한 이야기라면 도대체 무엇인지 조금은 궁금해지는 것이다.


우리는 다들 장롱 서랍 한편에 "차마 버릴 수 없는" 사연을 지닌 옷 한 벌씩은 있으니, 그런데 그게 티셔츠라면 어떨까?


편집자가 티셔츠의 현대적 존재론을 서문에 쓰고 있다시피, 티셔츠는 속옷에서 진화해서 평상복이자, 다양한 일러스트와 그래픽, 폰트, 사진, 기타 등등 문구와 이미지가 더해지면서, 그것을 입은 착장자에 대해 가급적 많은 것을 보여주기로 마음먹은 우리들의 또 다른 이름표, 조금 큰 명찰 같은 것으로 진화해 왔다.


하지만 여기에 '버릴 수 없는' 사연이 게재된다.


이 책은 나이도 성별도 직업도 지역도 각자 다른 20대에서 60대를 훌쩍 넘긴 다양한 일본인들의 사연이 들어 있다. 누군가에게는 지루할 수도 있지만, 나는 일단 이 글들의 출중한 사소설적 완성도에 한 번 놀랐고, 연령대가 다양한 인물들이 기고했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놀랐다. 물론 사후에 간추려서 책으로 만든 것이긴 하겠지만, 대체로 이 기고글들의 퀄리티는 상당히 안정감 있고, 단정한 문체이다. 때로는 자신의 간략한 이력서를 보는 듯하고, 때로는 자신의 비밀들을 맘껏 방출하는 그런 글들도 있다. 그래서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각각의 티셔츠들이 각별했던 것.


나는 화장실에서 사무실 책상에서 자기 전 침대 위에서 이들의 '비밀스러운' 사연을 재밌게 읽었다. 나도 행거 한편에 구겨진 구제 티셔츠가 있는 것처럼, 그리고 그게 왜 버릴 수 없었는지에 대한 생각을 시도해 본다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니.


여하튼 이 재밌는 기획의 책은 지금 일본인들의 어떤 구체적인 자화상으로 이를테면 소규모 사진집을 대신할 만한 그런 가치가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사소한 디테일들이 우리의 일상을 좌지우지하게되고 결국은 우리의 성격을 드러내기에...


이 기획이 지금 한국에서 이뤄진다면, 과연 50대 이상의 보통의 한국인들 중 자신의 티셔츠에 대한 사연을 써 보낼 사람들이 과연 있을까? 업계관계자들 말고? 그런 생각과 함께,


모든 것을 아카이브로 여겨서 뭔가 가치 있고 남들 보기에 꿀리지 않는 것들만 제대로 된 가치로 여기며 옷장을 숭상하며 소비하는 우리내 삶 속에 과연 진정한 나의 이야기는 빠져있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든다.


때문에 이 책의 이야기는 그러한 비교우위와 구별짓기라는 가속되고 반복되는 소비자본주의적 라이프스타일에 소박한 저항을 시도한다는 의미로 읽혀도 무리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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