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의 조건... 그때도 맞았고, 지금도 힘들다!

<이브의 몸값>, 조지 기싱

by 사장님의 세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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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기싱의 국내 출간 책들을 시간이 되면 꼭 읽어보고 싶다는 소망을 가졌던 적이 있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이 작가의 이름과 출간 소설의 제목에 대한 묘한 끌림이 있었다고 할까.

그리고 <이상한 여자들> 옆에 꽂혀 있는 <이브의 몸값>을 빌려서 2-3시간 동안 내리읽었다.


뭐랄까, 후반부 휘몰아치는 감정의 소용돌이와 그 담담한 대사가 부딪히는 인상적인 사실성과 현대적인 감각이 압권이었다. 제목에 대한 막연한 추측이 책의 결말 부분에서 제대로 해소되면서 몸값을 지불한 자와, 몸값의 목적물인 자, 둘 다 '자유'로워 진다는 어쩌면 다소 이상적인 이야기의 끝이 무척이나 묘한 미소를 짓게 만들면서 이 이야기의 처음으로 다시 되돌아가게 만든다.


<이브의 몸값>은 1895년에 발표된 소설로, 돌아가신 아버지의 채무를 우연히 받아내는 데 성공한 가난한 기술공, 모리스 힐리어드가 향후 1-2년은 일을 안 하고도 풍족하게 살 수 있는 목돈을 갖게 되어, 자신이 좋아하는 건축일에 열정을 쏟다가, 우연히 하숙집 앨범에서 한 여성을 발견하고, 그녀가 지금 런던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녀를 찾아 무작정 런던으로 찾아가면서 일어나는 이야기이다.


힐리어드는 아슬아슬하게 그녀를 뒤쫓기도 하고 그녀와 우연한 만남을 가장하기도 하는데, 그녀 옆에는 항상 마음씨 좋은 조연역의 여자 친구가 함께 있어, 이들은 같이 어울리게 되면서 힐리어드는 은근한 짝사랑을 키워가는데...


마침 힐리어드의 둘도 없는 친구 역시 삼촌이 죽으며 남긴 거대한 유산을 황동 철제 프레임 회사 설립에 투자하게 되며, 그 친구의 추천으로 힐리어드 역시 건축 관련한 회사에서 경력을 쌓기 시작하고, 그와 동시에 자신에게 맘을 열지 않는 여성과 파리로 여행을 계획하는데...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은 여자 주인공 이브에 대한 아주 애매모호한 묘사와 알듯 모를듯한 속내를 보여주는 장면일 것이다. 힐리어드의 적극적이며 한편으론 소극적인 대사와 말들에 전혀 호응하지 않을 듯 호응하지만 철저히 선을 그으면서, 이브는 자신이 갇혀있는 수렁에서 빠져나오고 싶은 욕망과, 지금 자신이 받아 마땅한 호의에 대한 고마움으로 힐리어드를 규정하려고만 한다. 그녀의 욕망은 대단히 현실적이며 속물적이지만, 그렇다고 정직함을 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한편 답답할 정도로 이상적이고 낭만적인 힐리어드는 자신이 누리는 '자유'로움만큼 밖에 이브에게 자유를 제공하지 못한다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품을 수 있을 만큼의 꿈이라도 나누고자 노력한다. 소박한 그의 이름은 모리스 힐리어드! 그걸 이브는 당연히 거절할 수밖에, 누구보다 이성적이며 지적인 그녀는 뻔히 가난해질 그들의 미래엔 1도 관심이 없었고, 힐리어드는 자신에게 호의를 베푼 착하고 멍청한 사람 1에 불과한 것.


소설의 결말부에 이 드라마는 작은 반전을 준비하곤 있지만, 그럼에도 이 인물들의 드라마는 아주 신중하고도 부드럽고 교양 있는 대사를 쏟아내며 상당한 품위를 갖추고 있기에, 후반부에 욕(이브 이 XX)이 나올 상황에서도 우리는 힐리어드처럼 가까스로 자제하며, 후기 빅토리아 시대의 각박한 삶의 조건과 지금의 상황이 거의 다를 게 없다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한편, 산업혁명이 고도화되면서 기계들에게 일자리를 뺏길 수 있다는 저임금 노동자들의 불안이 지금 시대 AI에 대한 심정과 비슷함을 느낀다.


한마디로 <이브의 몸값>은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그저 그런 연애 풍속 소설과는 다른 격을 보인다. 여러모로 현대적이다. 급작스런 도입부의 전개, 훌륭한 캐릭터의 탐구와 정교한 심리 묘사, 그리고 풍부한 대사 및 적절한 시간적 연출, 그리고 던게르트씨인가, 그 데우스 엑스 마키나 같은 설정과, 그 시대의 보통의 젊은 이들이 겪을 결혼의 현실적인 조건 같은.


시간이 더 지나면 더 뾰족해지고 더 인용될 만한 그런 풍부한 책이 아닐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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