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하고 비극적이며 주술적인...

<태풍의 계절>, 페르난다 멜초르, 엄지영 옮김, 을유문화사, 암실문고

by 사장님의 세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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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난다 멜초르의 <태풍의 계절>을 도서관에서 3번째 빌려서야 완독 한다. 책을 읽으며 이 책의 번역자 엄지영 씨를 개인적으론 모르지만, 뭐랄까 너무 동정심이 들었다고 할 정도로, 수위가 엄청나다. 그럼에도 마법적인 흡입력으로 읽어 내려갔으니, 마치 포크너의 고딕 신화에 장 주네와 약에 맛이 간 부코우스키가 한 트럭 등장하는 그런 이야기...


이 저주 서린 마녀의 정체를 알 수 없는 냄새가 오랫동안 코 끝에 맴돌아 지금은 11월이지만, 빨리 태풍이라도 다가와 모든 것을 씻겨 내려갔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지독하고 용기 있는, 고발이자 비장한 리얼리즘의 성취이며, 멕시코에서 포크너가 19금 소설로 위장하고 관짝을 발로 차고 튀어나온 듯한 베라크루스식 고딕 서사.

모든 것의 시작은 마녀의 시체가 농수로에서 발견된 것이지만, 작가는 주인공 배역으로 어울리지 않을 법한 우매한 민중들을 호명하며, 그 이름 없는 호모, 미혼모와 가족의 유무형 폭력에 시달리는 여성들을 화자로 삼아서 근원적이며 유기적이며 지극히 저주받은 가난한 멕시코 마을의 불길한 초상화를 완성하였다.


그래서 이 소설은 마녀에서 출발해 대지로 돌아가지만, 결국 마녀를 제외한 모든 이야기이며, 언제나 화창한 하루가 아닌 번개가 뻔뜩이는 자욱한 구름으로 꽉 찬 대기의 낮은 기운들, 그 어스름의 윤곽들만 보이는 듯 터무니없는 답답함으로 가득 차 있다. 별안간 폭력이 시작되고, 서로가 서로를 탐하고 이용하고 휘감아 돌아가면서 떼구정물을 흘리면 더 큰 회오리를 틀며 콸콸콸 쏟아져 깊은 대지 안으로 쏟아져 내려간다.


솔직히 이 적나라하고도 고약한 냄새가 나는 이 소설을 읽고 나면 정신이 아찔할 정도라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싶다. 분명한 것은 이 소설을 읽고 나면 기존 남미 여성작가들의 책들이 너무 온화하게 느껴질 정도랄까. 멜초르의 다음 작품이 번역되었으면 좋겠다.


평정 4.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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