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 레인>, 파트릭 모디아노
파트릭 모디아노는 그 특유의 짧은 분량! 때문에 과거에도 그렇고 지금도 가볍게(?) 즐기는 프랑스어권 저자 중 한 명이었다. 젊은 시절, 그를 만만하게 보고, 히마리 없는 작가로 상정하고 하지만 그 특유의 몽환성이랄까? 안갯속을 헤매는 간접 조명이 가득한 특유의 문장들 사이사이의 분위기 같은 걸로만 생각했지만,
그랬던 그가 당당히(?) 노벨 문학상을 받는 저자가 되고부터는 오기로라도 그를 더 읽지 않으려 했던 쪽에 속했다. 과거의 내 평가를 수정하고픈 욕망을 더욱 억눌러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할까? 부자연스럽지만, 인생과 또 다른 의견들에 대한 우리의 평가라는 것은 항상 그런 부정성으로 점철되어 있다.
사실 내가 신간으로 잘못 알고 집어든 짧은 책 <메모리 레인>을 3페이지 정도 읽어 내려가다가 아, 이거 언젠가 읽었던 책이구나라고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이번에도 끝까지 다시 한번 읽어 내려갔으니,
나는 <메모리 레인>이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보다 좋은, 잘 쓰인 책이며, 보다 현대적이란 생각이 들고, 앞으로 또 다른 저자의 글이나 소설에서 이런 식의 기억에 관한 씁쓸한 상념에 잠길 수는, 같은 방식으로는 도무지 없겠단 생각이 든다. 이것이 파트릭 모디아노의 문장이여 그 특유의 분위기었음을 기억하고,
요즘은 이런 특유의 분위기를 가져다주는 다른 책이나 문장이 없기에, 아주 절절하게 귀해져 버렸다는 생각도 한편으론 드는 것이다. 시간과 세월이 모디아노를 퇴화시키거나 빛바래게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도드라지게 만들었음은 결국 모디아노 소설의 변하지 않았던 완성도 때문이니...
젊었던 시절 한 때 우리를 사로잡았던 음악을 들려준 밴드가, 나이 들어 60대가 되었을 때 다시 재결합해서 라이브로 그 곡을 연주했다면, 우리는 젊은 시절 들었던 바로 그 음악과는 여러모로 괴리가 느껴져서 소리를 끄는 쪽을 선택하게 될 공산이 크다.
전적으로 우리가 그 밴드의 일거수일투족을 따라가며 변해가는 모습들에 대한 저항감을 내려놓거나, 과거의 뾰족했던 판단력을 관용과 배려심으로 교체할 시기를 놓쳤기 때문인데,
그럼에도 어떤 밴드들은 그 밴드와 나와의 10년 혹은 그 이상의 간격을 넘어서는 울림을 줄 때도 가끔 있다.
우리의 경험들은 그렇게 비선형적이며 중간에 폭력적으로 삽입되는 식의 불가항력들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늘 경계하게 되곤 하지만, 나는 이제야 모디아노의 문장과 그 분위기를 용인해 줄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런 갑작스러움과 반가움, 쓸쓸함과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음, 오직 추측으로만 가득한, 빛바랜 사진 속의 사람들을 추억하게 되는, 오래된 햇볕의 자국 같은 느낌이 여기 <메모리 레인>에 흐르고 있다.
이야기를 따라가면 별 것은 없다. 하지만 우리가 이 책에서 여러 소모임의 희미하지만 특징이 잘 잡힌 캐릭터와 70년대의 삶의 방식을 상상할수록 오히려 우리는 나의 젊은 시절과 그 희미하게 등장했던 주변 인물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그 희미한 그림자들이 늘어뜨렸던, 당시에는 몰랐던 어떤 기분과 분위기들이 생각나면서, 그 자리에서 못 견뎌하던 그 공기의 중압감이 희석되면서, 우리의 젊음이 한 층 선명하게 부각되어 가는 것이다. 이는 프루스트식의 마들렌의 맛과는 다르다. 과거에도 미래에도 변함없이 있을 것이지만, 결국 내가 모디아노의 책에서 발견하게 되는 나의 경험들과 불완전한 기억에 관한 불완전한 초상이었으니, 그것은 보고 싶지만 볼 수 없다는 시간의 가역성에 대한 아련함 보다는, 내가 언젠가 만져봤고, 조립해 봤던 어떤 사물을 다른 사람의 손길 아래서 다시 확인하는 그런 다시 나를 방문했던 선명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