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성장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by 사장님의 세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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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유독 베스트셀러인 작가들이 있다.

클레어 키건은 과작을 하는 작가로, 20년 동안 긴 장편이 아닌 단 4권의 단편집만을 출간한 작가이다.


단편이 그녀의 본령이라니, <이처럼>이 그나마 긴 편에 속한다.

2022년 부커상 최종 후보작에 오른 <이처럼>은 114페이지 정도이다.


소설의 줄거리는,

80년대 중반 아일랜드의 어느 항구 마을의 겨울,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주에 수녀원에 석탄 배달을 하러 간 석탄 상인 빌 펄롱은 석탄 창고에 갇혀 있는 헐벗은 소녀를 발견하게 된다.

펄롱은 자수성가한 노동자로, 어머니는 미시즈 윌슨이라는 연금 생활자집의 하녀였다. 미혼모였던 그녀의 아들을 미시즈 윌슨이 거두어 손주처럼 키워냈던 것. 가정을 꾸린 이후에도 펄롱은 비록 아비 없이 태어나 주변의 눈총을 받으며 자랐지만, 5명의 딸에게 각각 크리스마스 선물 정도는 사줄 수 있는 지금의 상황을 감사해하는 평범하고 근면한 노동자다. 가끔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을까 궁금해하지만, 아침부터 저녁까지 쉴 틈 없이 석탄과 땔감 연료를 주문받아 배달하고 나면 하루는 순식간에 지나가고, 역시 근면한 아내 아일린의 잔소리와 딸들의 성실한 모습에 작은 행복을 느낀다.


그러던 그가 수녀원에서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는, 당시 미성년자인 미혼모들의 모습을 보면서, 크리스마스 정신을 깨우치기라도 한 듯, 자발적으로 수녀원으로 향해 '세라'라는 이름의 소녀를 석탄 창고에서 자신의 집으로 데려오면서 이야기는 끝이 난다.


당시 작은 지역 사회에서 수녀원의 위상은 교육기관과 세탁소를 운영하며 꽤나 권위적이었으며, 수녀원장의 지위는 시장 다음으로 권력을 행사했을 것이다.


한편 세탁소의 노동력은, 그 지역사회에서 소외되거나 병이 있거나 가톨릭 교리에 벗어난 어린 임신부들로 충당되었고(마치 삼청 교육대 같은! 교화 목적의 강제 감옥), 그 과정에서 이들의 인권은 너무나 당연하게 유린되고, 안 그래도 남성위주의 가부장제 농민-노동자 계급에서 차별을 받은 보통의 여성들보다, 더 낮은 처우를 받았던 것.


크리스마스 미사를 드리기 전 펄롱은 자신의 아버지가 윌슨 여사네 집에서 일하는 하인 네드였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알게 된다. 네드를 만나진 못했지만, 안부를 묻는 대신에 펄롱은 미사 내내 씁쓸한 세상의 차가운 진실을 받아들이고,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던 일, 만약 미시즈 윌슨이 자신의 어머니를 부정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수녀원의 부속기관인 세탁소로 보냈다면, 자신은 지금의 당연한 삶을 누리지 못했을 것이기에, 자신이 지금 할 수 있는 바로 그 일을, 많은 사람들이 쉬쉬하며 인정하지만 절대 개입하거나 거스르기 힘든 그 일을 하고 만다. (하필이면 구해낸 소녀의 이름이 자신의 엄마와 같은 이름인 '세라'다)


이후 일어난 일은 불 보듯 뻔하다. 수녀원은 석탄 거래처를 펄롱이 아닌 다른 상인과 계약할 것이며, 펄롱의 주된 거래처들에게 거래를 중단하길 권했을 수도 있다. 또는 수녀원장의 의뢰로 경찰 권력이나 법원 명령 혹은 세무 공무원을 통해 회계 감사에 돌입할 수도 있을 것이다.


펄롱의 삶은 정상과는 달라질 것이며, 모든 사업을 정리한 채 미국으로 새로운 기회의 땅으로 갔을 수도 있다. 하지만 펄롱은 누구도 하지 않은 일을 마치 산타처럼 저지르고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이 소설은 킬리언 머피가 주연으로 영화화된 바도 있다. 영화는 아직 보지 않았지만, 대충의 분위기 같은 게 그려지는 소설이라 크게 어렵지는 않을 것도 같다. 근데 영화가 크게 기대가 되진 않는다.


여하튼 이 소설은 다분히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주제를 선택했고,

거의 변하기 힘들고 너무 선량한(?) 중년 남성이 자신의 뿌리에 대한 자각을 함과 동시에 한층 사회적으로 성장하는 계기를 조심스레 탐색하면서,

아일랜드의 종교 사회에 뿌리 깊이 자리 잡았던 어두운 시스템에 대한 고발을 실행하고 있다.


키건의 문체는 체홉의 그것처럼 날카롭고, 하나의 문장 하나의 여운으로 빌 펄롱이 되어 보라고 독자를 천천히 꼬드기는데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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