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사회>, 한병철
2012년 베스트셀러인 <피로사회>를 필두로 지금까지 20권 가까운 짧은 철학서(?), 에세이(?), 산문집을 출간하고 있는 나름 왕성한 작가, 한병철의 <불안사회>를 반 이상 읽었다.
항상 느끼는 바이지만, 이 책도 역시 '해결'이나 질문에 대한 '정답'을 강권하고 있진 않다.
다만 어디선가 들어봤던, 한 번쯤은 생각해 봤던, 또는
그렇게 막연하게 생각해 봤거나, 그건 아니라고 생각했던 점들에 대한,
글을 쓰다가 우수수 정리가 된 듯한 문장을 만나게 된다. 그래서 뭐랄까 신선하지는 않고, 이게 이 저자의 뿌리 깊은 스타일인가 싶다. 명쾌함보다는 정리해 나가는 과정의 사유 같은 걸 꾸준히 그려가는 것.
동어반복인 것도 같고 누군가 예견했거나 이미 다들 그렇게 믿고 있었던 변화들, 무의식의 점점들을 이어서 이런 종합적인 책을 구상하고 만들어낸 것 같기도 하다.
한편, 그럼에도 이 책에서 '희망'에 대한 정합적인 정리, '희망'의 수동적인 염원과도 같은 사전적 의미에서 도약해,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해위성을 밝혀놓은 점이 가장 인상에 남는다.
우리는 흔히 '준비된 자만이 제대로 된 기회가 왔을 때 그것을 잡아 챈다'고들 말한다. 여기서 '희망'의 독일어 어원인 '웅크리고 기다린다'라는 뜻을 적용해도 될 것이다. 준비를 하고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는 그 적극성이 희망이다. 아무것도 안 하고 간절히 맘속으로만 염원하는 게 아니라. 그저 말로만 좋은 일이 생겨달라고 기도하는 중얼거리는 것이 희망의 내용이 아니라, 그것을 실천해서 옮기고 삶의 부정성을 제거하는 능동성이 희망의 속성이라는 점이, 일견 당연해 보이지만 또 스스럼없이 할 수 있는 성격의 것들은 또 아니라는 점, 그래서 내면의 이야기가 아닌, 외부로 자신의 이야기를 완성해 가는 과정이라는 점도 문득 희망하기라는 것이라 생각해 본다.
그래서 이 불안사회를 끝낼 수 있을까? 그럴 것 같진 않다. 우리는 자유의 의미에 대해서도 불안을 종식할 희망하기의 단계별 양태에 대해서도 이미 무력해져 버린 것 아닐까. 우리를 둘러싼 미디어의 환경과 흔히 말하는 자기 착취 자본주의의 압제에서 얼마나 벗어날 수 있을까? 이미 어느 정도 자본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만 '희망'은 가능한 것이 아닌가?라고 되물을 수 있을 것이다.
희망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기가 아니라, 희망의 부정성을 가려내서 희망의 단계별 프로세스를 시도라도 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과감하게 모든 걸 스탑하고 일시 정지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저자 한병철에겐 그런 희망은 지금 분명 존재하고, 앞서 <피로사회>를 던진 후 그 희망이 계속 글쓰기로 이어져왔던 것 같다. 20권이라는 책을 출판할 수 있는 출판사의 사랑을 받는 저자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한국 출판 시스템에 환영받는 훌륭한 저자가 된 그다. 그에게 희망은 일봉의 진부한 것이 된 것 같다. 일상이 자발적인 희망으로 가득 찬 듯보인다. 다음 책들을 읽어줄 독자가 어느 정도 존재한다는 사실. 그 나름 자본주의의 시스템에 잘 적응하는 듯해 아주 희망차고 뿌듯한 느낌까지 든다.
책들이란 그런 희망을 실천하고 있는 듯한 환상을 낳고 있는 것 아닌가?
불안사회, 서사의 위기, 피로사회, 정보의 지배, 에로스의 종말,....
저자 한병철이 붙인 이런 레테르의 책들이란, 매년말 발간되는 베스트셀러 트렌드 코리아에 비견될 정도로 미끈하고 혹자를 붙잡는 듯하다. 그래 그 정도로 꾸준하게 희망하기를 한다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것!
나의 희망하기는 오늘도 영업시간까지만 기능하면 충분한 것인가 반성해 본다.
하지만 이런 자조적이 되는 것을 저자는 허락하지 않을 것이니
새해에는 정신 바짝 차리고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쓰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지금은 "어떤 어떤 사회"라는 다소 공격적인 레테르를 통한 한병철 책 특유의 네이밍들은, 지금 시대의 트렌드를 따르는 영특한 방법이면서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마치 "이 책을 읽어야 지금 이런 사회에 대한 설명과 해법을 얻을 수 있다"는 식의 의도적인 환상을 품게 만든다. 즉 지금이 어떤 어떤 시대인 만큼 독자들에게 이 책을 사게 만드는 이를테면 마케팅 용어로 쓰이는 고도의 부정적 강화의 한 방식인 것이다. (하지만 별로 제거되는 것은 없다.) 독자는 이 책을 읽으면 뭔가 알게 된다는 착각에 빠진다. 결국 크게 알지도 못하고 크게 도움되지도 않게 된다. 유튜브 썸네일같은 그런 제목장사와 같단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