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을 완성하기 위하여>, 파트릭 모디아노
최근에 모디아노의 책을 오랜만에 다시 보고 도서관에서 그의 또 다른 책을 신간으로 빌렸다. 이번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에 편입된 <추억을 완성하기 위하여>. 첫 문단을 읽자마자 오래전 20대 후반에 이 책을 읽었던 순간이 프루스트의 마들렌처럼 기억이 났다.
생각해 보면 모디아노야 말로 거리와 카페 또는 파리 공간에 관한 한 현대적 프루스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 그의 책들 문단들 문장들은 거의 파리 도시 구역과 지도를 따라가며 그 특징적인 골목의 초입과 거리, 돌계단. 보도블록, 지붕의 실루엣, 처마나 문지방의 형태 그리고 그곳을 언젠가 가봤을 것 같은 기시감을 펄럭거린다. 출렁이는 기분 좋은 떨림 같은 묘한 안도감과 향수를 끌고 오지만 그럼에도 나중에 남은 것은 가시지 않는 고독감과 추억으로 충만한 고립감이다.
사실 나는 오랜 시간 모디아노를 평가 절하했던 것 같다. 너무 이야기가 없고 인물을 창조하는 능력보다 분위기나 기억 같은 개인적인 감상주의에 침윤되어 모험적이지 않고, 한결같은 문체나 구조 때문에 스스로 매너리즘에 빠져있단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느덧 나이 든 독자가 되어 다시 돌아간 빈티지 모디아노에게는 뭔가 특별한 것이, 고유의 것들과 조응하는 현대적인 감각과 애틋한 정서와 무력한 인간의 불안전성, 근원적인 비애감을 토해내는 멀쩡하고도 단정한 실존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경험을 주는 작가가 상대적으로 귀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달까.
원제는 “가족 수첩”인데 솔직히 원제가 이 책에 더 어울리는 제목이다.
한편 모디아노적 세계로 진입하는 오솔길로 이 책 보다 더 완벽히 모디아노적 글쓰기를 보여주는 책도 없을 것이다. 참으로 잘 기획되고 잘 쓰였다고 할만한 구성으로 짧은 분량이지만 긴 장편을 읽은 기분좋은 피로감에 사로잡힐 만한 책이다.
기존의 프랑스적 전통과 현대적인 소설 실험의 결과들을 잘 조합한 느낌이라, 문체의 세련됨은 거의 독보적이다.
번역자 김화영의 후기도 충실하다. 그때는 읽지 못했던 것이라 지금 읽다보면 여러가지 문제의식 같은 것도 걷어 올릴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