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아들>, 데니스 존슨
1999년에 나온 데니스 존슨의 <예수의 아들>은
마치 찰스 부코스키의 페르소나 (헨리 치나스키-행크)처럼 일관된 화자가 등장하는 아주 짧은 단편들 묶음집이다. 단편이라고 하기에는 완성도가 미묘하게 일관되지 않아 보이지만 그럼에도 묘한 서정성과 환상성, 일견 모순되고 진의를 짐작할 수는 없는 속에서 슬프고 애처러운 군상들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간다. 그 상황 속에서 슬픔은 짐작되지 않을 정도로 깊은데 그것을 이야깃속 주변인들은 모르고 독자들만 황망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재활중(아마도 글을 쓸때?)일 때를 제외하면 항상 알코올중독자에 약물중독자인 듯 보이는 이 청년은 정신이 멀쩡할 때는 병원 응급실에서 보조역할을 하거나 요양병원에서 돌봄 보조일을 하는 것 같다. 그리고 항상 결혼은 실패해 있고, 아내에겐 돌아가지 않은 채 밤시간을 싸구려 술집 바에서 그와 비슷한 신세인 남자들 여자들을 만나 대화를 나눈다. 어느 페이지를 들춰도 달큼한 미처 소화되지 않는 알코올냄새와 축축한 곰팡이 냄새가 나거나, 더러운 자가용 시트 냄새가 배어 있다.
거의 대부분 그가 만나는 사람들은 범죄자나 사회 부적응계층들, 중독자들의 세계를 정면으로 다루지만 이상하게 대사들은 지나치게 정상적이며, 데니스 존슨이 만들어낸 인물들은 도덕이나 윤리를 떠나 '아름다운' 사람들처럼 그려진다. 묘하다. 그리고 그 이유는 이 내적 화자의 세상을 보는 특유의 시선 때문이며, 정돈된 문장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들 옆에는 늘 죽음과 죽음에 대한 충동이 폭력적으로 표출되지만 대부분 이상하리만치 정상적인 공기 속에 부유하고 있어서, 그 아름다움의 인간들이 '예수'의 아들들일 수 있는지, 화자를 포함한 이야기인지 우리들이 짐짓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기차의 꿈>을 먼저 읽어서 인지, 이 단편에서도 기차를 타고 움직이는 에피소드들이 나오는데 유독 각별했다.
전체적으로 이 소설집은 계속 최초 이야기로 돌아가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한 권의 이야기로 받아들여질 필요가 있다.
이런 책들이 계속 번역된다는 사실은 독자들을 즐겁게 만든다.
또 한편으로 이런 식의 전통이 미국 소설의 한 축을 차지함은 내가 예전에 읽었던 어떤 소설들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확장시킨다는 점에서도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