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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실남실 Mar 12. 2024

천명관과 김언수


소설가이자 영화감독인 천명관의 2004년 출간된 소설 "고래" 가 한강 작가가 수상한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분에 후보로 올랐단 뉴스를 언젠가 봤습니다.


작가 한강 이후 영미권에서 한국의 소설가들에 대한 관심이 부쩍 증가한 느낌입니다. 한데 출간된 지 20년이 지난 책이 후보로 선정되었다는 점이 뭔가 약간 이상한 느낌이 들기도 하네요.


지금 현재 활발히 활동하는 작가의 책도 실시간으로 번역되는 추세인지는 한국 번역문학원의 기조를 잘 지켜보지 않아서 잘은 모르겠지만... 여하튼 "고래"는 출간 당시 입소문이 무성했던 책이었던 기억이 있네요.


전통적인 한국의 현대 소설들에 어떤 빚도 지지 않은, 도발적인 형식을 갖추었다는 식으로 호평을 받았던 느낌인데, 실제로 이 책을 읽어보면 뭐랄까,


지금은 유효하지 않는 듯한, '변사' 느낌의 화자가 등장해서, 세 명의 여성 캐릭터를 중심으로 그녀들의 이야기를 정말 무수히 나열되는 입담들 에피소드들로 엮어내고 있어서 그런 점이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이란 생각. 다소 전근대적인 설정이고 ~카더라식의 무책임한 그래서 오히려 흥미로운 '구라'들로 점철된, 소설의 미덕인 플롯 구성이나 유기적인 스토리보다는 재밌는 이야기들이 더 우선이었고, 문제적인 캐릭터라기보다는 어디선가 본 듯한 인물 군상들로 이뤄져서 총 3부 구성 중에 2부까지 흥미롭다가 나머지 부분은 반복되는 듯한 느낌이라 읽기 상당히 지루했던 기억이 있네요. 특히 ‘고래’라는 제목의 상징성과 비의적인 감동이 약했던 느낌. 마치 시나리오에 쓰일 아이디어들을 굴비 엮듯이 쉬지 않고 엮어내면 이런 책이 탄생할 수도 있다 그런 느낌에 가까웠습니다. 때문에 “고래”에 대해서 중남미 마술적 리얼리즘 운운은 지금 봐도 좀 오버였던 것 같고,


한참 가벼운 이야기들도 집중력을 가지고 엮어내면 소설이 될 수 있다 뭐 그런 가능성 언저리를 탐색했던 느낌이었네요.


천명관은 작년에 동료 소설가 김언수의 "뜨거운 피"를 소설을 원작으로 동명의 영화 "뜨거운 피"를 감독하면서 영화감독으로 데뷔합니다.


시인이었던 유하가 영화감독으로 한국 영화 시장에 나름 입지를 구축했다면, 천명관의 "뜨거운 피"는 수정주의 누아르 풍이라고 일컫는 어떤 흐름에 설만한 그런 작품을 만들어냈다고 생각됩니다.


배우들의 연기는 무척 뛰어났고, 나름 김언수 특유의 비관적인 인간관이나 세계관들을 천명관이 잘 보여줬단 생각은 듭니다. 다만 영화적 재미나, 완성도는 또 다른 이야기가 될 것 같네요. 왜냐하면 천명관이 의도하는 세계가 과연 기존 한국 감독들이 보여준 한국적 누아르와 다른 점이 있냐 따지자면 저보단 비평가들이 더 할 말이 많을 듯하기 때문에 다소 유보적입니다.


한편, 저는 김언수의 대표작이라고 할 만한 "설계자들" 이란 소설이 미국의 유수의 출판사에 억대 인세를 받고 팔렸다는 소식도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김언수의 "설계자들"은 뭐랄까? 예전 장준환의 영화 "화이"를 떠올리게 하는데 그보단 앞서 쓰인 책이긴 하지만, 특이한 설정과 완성도 있는 세계관에도 불구하고, 인물들의 개성이나 캐릭터의 배경 설정등이 조금은 어디선가 본 듯한 기시감과 평이한 대사들, 긴장감을 어디서 만들어 내야 하는지 모를 장면 구성으로 점철되어 상당히 아쉬운 독서로 기억합니다. 문득 "설계자들"이 이미 영화화된 것처럼 생각했는데, 허진호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는 2017년 기사만 검색되네요. 뭐 그렇습니다.


제가 더 관심 있는 분은 김언수 쪽입니다. 최근에 그의 작업실에서 인터뷰 영상을 유튜브로 보게 되었는데 본인만의 확고한 작업 루틴이 있고, 무엇보다 아, 이 작가는 "성실함이 강점이구나" 하는 의지를 보았다고 할까요, 해서 기대가 되는 쪽입니다. 


반면 천명관 작가는 “고래”이후에는 소포모어 징크스에 걸린 건지, 아니면 못내 영화감독이라는 꿈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인지, 그의 다음 소설들에서 “고래”에 비견할 만한 충격은 주지 못한 모습입니다. 출발이 시나리오 작가였다는 점도 한몫하겠지만, 소설가라는 자의식보다는 이야기꾼, 연출가로서의 재능을 더 믿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네요. 여하튼 천명관 김언수로 이어지는 한국의 이야기꾼들의 활약은 그럼에도 계속 더 주목해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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