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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실남실 Mar 13. 2024

상이군인 바통씨의 일일

에마뉘엘 보브의 <나의 친구들> 리뷰 

1923년에 출간된 <나의 친구들>은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 같은 책이다 

1930년대 한국의 수도에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 있었다면 

1920년대 프랑스 파리에선 에마뉘엘 보브의 <나의 친구들> 주인공 빅토르 바통의 일일이 펼쳐진다고 해도 좋다.  


뭐랄까? 따뜻하고 총명한 묘사에서는 외젠 다비의 <북호텔>을 연상케 하지만 

보다 날 것의 느낌에, 보다 미완의 느낌이 더해지면서 아련한 연민에 잠기게 하는 그런 종류의 소품이다. 


1차 대전에 참전 부상당한 상이군인 빅토르 바통은 노동자들이 모여사는 허름한 지역의 7층 아파트 옥탑방에서 3달에 한 번 나오는 연금으로 생활하고 있다. 


직장도 잡아야겠지만 일단은 자신이 거주하는 건물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으로 하루하루를 임한다. 그리고 오늘도 난방 안 되는 단칸방에서 추위에 떨다 일어나, 햇빛이 방을 따스히 데워주는 낮이 되어서야 추적추적 밖으로 나간다. 

오늘은 진정한 친구를 한 명이라도 만날 수 있을까? 


무엇보다 그는 외롭다. 전쟁이 끝나고 사회가 재건을 이룩하려는 바로 그 시점,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또 사람들의 정을 간절하게 바라는 주인공 바통



대도시 1인칭 화자의 시선은 마치 벤야민의 산책자처럼 목적 없이 거리를 빈둥거리며 호소하고 있다. 하지만 바통이 맞닥뜨리는 인물들은 행색도 초라한 그를 이용해 돈을 뜯어내거나, 그의 진심에는 관심도 없이 속물적인 위선만 떨려고 하는 인물 그리고 그와 비슷한 생각을 가질 것이라 생각한 여성들과의 맹목적인 혹은 현타만 오는 잠자리뿐이다. 


간절함과 기대의 배신이 일상적인 이 지옥같은 도시에선 한 번의 짧고도 진정한 우정은 기대해선 안되는 걸까? 작가는 그가 바라본 파리의 일상적 현실에서 필요한 것은 자그마한 온정 혹은 진정한 관계를 이룰 수 있는 작은 포옹, 하물며 순간의 눈빛 같은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나 보다. 


전쟁 후 어수선한 세계에서 모두가 이기적으로 자신의 물질적 이득을 쟁취하기 바쁘고, 또 목소리 높여 자기 할 말만 하는 자본주의 민주 공화국의 평범한 길거리와 악취 나는 카페, 다닥다닥 붙어서 음식물을 씹어 삼키는 골목 가게에선 어떤 고독과 소통의 단절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때문에 주인공 바통이 겪는 소외와 고독은 영원히 현재성을 갖게 된다. 

그가 걸어가는 거리에 내리는 뿌연 안개비와 어두운 거리를 밝히는 희미한 가스등, 기괴한 표정의 사람들, 궁핍한 옷차림과 퉁명스러운 말투, 손톱에 낀 검은 때와 뒷굽이 닳고 자꾸 비가 스며드는 구두들... 


이 모든 어지러운 사물들 위로 바통은 오늘도 기대를 품으며 자신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친구들을 찾아 헤맨다. 우리는 이미 잊어버렸을 순수한 실패로 점철된 어떤 시도. 


<나의 친구들>이란 따뜻한 어감의 제목은 바통의 처절한 실패를 생각할 때 내내 아니러니 하다. 


이 책을 덮으면서 <람보> 1편에서 모든 사건이 마무리 되고 내 뱉는 실베스터 스텔론의 처절한 절규가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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