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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실남실 Mar 21. 2024

만약 당신의 ‘명성’이 ‘생명’ 그 자체라면?

레아 뮈라비에크, <그랑 비드> 그래픽노블

가끔 도서관에서 그래픽 노블을 빌려본다


특이한 세계관과 조화롭게 표현된 인물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환기되는 요소들이 많기 때문이다


텍스트로 된 소설보다는 이미지들이 훨씬 직관적이라 책장 넘기는 재미도 쏠쏠하기 때문에


더 손을 많이 사용하게 되고, 그래서 뭔가 더 아날로그스러운 독서방법이라고 할까?


<그랑 비드>의 세계관은 명성 혹은 남이 자신을 인식하는 정도 (=존재감의 양)이 인간 생명 자체가 되는 사회,


때문에 도시의 무수한 간판은 상호나 브랜드 이름이 아닌  광고비를 많이 지불할 능력? 이 있는 사람들의 이름으로 도배되어 있고, 존재감이 0으로 수렴하는 사람은


심장마비에 걸려 생을 떠나고, 엄청난 존재감을 가진 사람들은 불사신이 된 채로 늙지 않게 된다.


더러 불사신도 죽을 순 있다고 하는데 여튼 이 소설에서는 유명 가수와 동명인 주인공이 등장해서


명성의 단맛을 알게 되었다가 나중에 표제의 장소인 <그랑 비드>로 간다는 그런 플롯인데…


뭔가 설정만 특별하고 프랑스 문학 특유의 설명 없는 딱딱한 느낌도 없지 않지만,


데즈카 오사무를 연상케 하는 오래된 카툰, 레트로풍의 구성과


현란하고 고전적인 작화능력이 갸우뚱하게 만드면서도 빠르게 진행되게 만든다


지금 삶의 복잡성의 원인인 휘발성 강한 요즘 SNS의 영향력을 비꼬는 듯한 느낌이 든다.


한편 작화실력에 비해 스토리와 플롯이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뭔가 2부-3부로 이어지며 로드무비적인 성격이 더 가미되었다면 어땠을까.


예전에 앤드루 니콜 감독이 저스틴 팀벌레이크 주연으로 만든 <인 타임>이라는 영화도 용두사미 꼴이었는데


이 그래픽 노블로 설정에 스스로 압도당한 그런 느낌이며


설정을 강화할 수 있는 치밀한 관계망보다는 독자에게 주인공의 심리를 직접 경험하게 하려는 의도로 작화가 기울어 있는 느낌이다


숫자에 의해 자신의 존재감이 공고해질 수 있다는 것은 자본주의를 구성하는 하나의 원리라는 씁쓸한 진실을 알게 하지만,


그래서 “거대한 공허“라는 시스템 안이 아닌 밖을 택한다는 것은 다소 김 빠지는, 쉬운 해결이란 생각도 든다.


별 5개 중 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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