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라미드
#헨닝만켈
2-3년 전 유튜브로 음악을 듣다가 NPR 타이니 데스크 썸네일에 <블랙 크로우즈>가 떴을 때 내 평생 가장 빠른 클릭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잽싸게 누르고 10분 넘게 향수에 빠져 행복했다면,
도서관 신간 서가에서 발견한 만켈의 책은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낚아채야만 하는 그런 책들 중 하나다.
”북유럽 스릴러의 거장“, 박찬욱이 애정하는 ”마르틴 베커“ 시리즈의 정통 후계자, 등으로 알려진 ‘헨닝 만켈‘
그의 책들이 가끔 헌책방이나 동묘 길바닥에 출몰하면 거친 인파를 뚫고 들어가서라도 누군가 손에 들고 있더라도 뿌리치고 웃돈을 주고서라도 무조건 손에 쥐어야 하는 것이다.
뭐랄까? 조건 없는 애정이 개입되는 저자 중 하나
그래서 이 책을 출판한 ’피니스 아프리카에‘ 출판사가 계속되길 기원하고 또 기원하게 된다.
발란데르, 영미식으로 월렌더,라는 주인공은 40대 - 50대 중년의 이혼남으로 그의 생활의 면면은 우울하기 그지없다. 주변 형사들은 모두 중년의 훈장인 고질병들을 하나씩 달고 다니고, 인스턴트로 점철된 그의 식습관은 한심한 수준이다. 그의 유일한 낙은 오래된 턴테이블로 오페라를 듣는 정도. 지극히 현실적인 배경들 매번 선빵을 당하는 불우한 에피소드들을 볼 때면 독자는 무척이나 위태로운 감정을 느끼는데, 한편 처음엔 미스터리로 시작한 범죄 케이스는 점차 사회적 모순과 갈등을 보여주면서 복지국가 스웨덴의 현실을 넘어서 깊은 여운을 남긴다.
무엇보다 만켈의 문체는 더할 나위 없이 간결하고 군더더기가 없다. 살인자에 대한 상상력을 어설프게 불어넣지 않고, 미스터리를 해결해 가는 그 오리무중의 상태와 피곤함, 지루한 수사의 과정들, 정말 우연적인 단서들을 찾아가는 과정 그 자체의 핍진성 때문에, 결국 결론에 가서 우리는 해결된 사건의 얼개를 맞춰보며 상당한 비애감, 또는 허탈감에 이르게 된다. 아무런 교훈도 아무런 동정도 없이 사건은 해결되고 또 발렌데르의 하루는 그렇게 어떤 뿌듯함도 없이 피로감만 내내 축적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든다. 그의 피로를 대신 겪기 위해서 우리는 만켈의 발란데르를 사랑하는 게 아닐까 하고, 우리들 역시 이 생을 돌아가게 만드는 하루의 대부분은 비슷한 피로감과 무의미한 반응들로 소모시키고 있는 것 아닌가? 때문에 발란데르의 책들은,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로 점철된 미스터리 책들과는 현실감의 격차가 확연하다.
독자는 발란데르와 그 비슷한 형태로 뿌리 박힌 듯한 동료들의 한심하고 때로는 불완전한 모습을 보며 지루한 수사를 따라가고, 사태를 정확히 인지하면서 그 과정에 내내 참여하게 된다. 어떤 사건들의 수확이란 그래서 굉장한 허탈감을 주는데 이 허탈감이 독자의 삶에 주는 위안의 강도는 어마어마하다.
이 책 <피라미드>는 발란데르가 베테랑 형사가 되기 이전의 시간을 담은 프리퀄 형식의 중단편 모음집이다.
5편의 중단편이 시기별로 실려 있는데, 하나의 사건의 시작과 끝을 담백하게 담았고, 그 내용들은 놀랄 만큼 경제적이며 필요한 말만 사용되고 있다. 너무 아껴보게 되는 종류의 스토리이며 왜 독서가 가장 황홀한 취미인지를 이런 책들이 증거하고 있다고 해도 과장은 아니다
#남실장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