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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조일남 Apr 16. 2019

인생이 불공평하지만 그럼에도 뛰어들어야 하는 이유

<머니 볼>


저녁 6시 반이면 스마트폰을 켜놓고 LG 트윈스의 야구 중계에 목을 매던 적이 있었다. 그러던 내가 더 이상 야구에 큰 관심을 갖게 되지 않게 된 까닭은 이병규가 은퇴해서도, LG 트윈스가 야구를 못해서만은 아니다. 바로 야구가 숫자와 자본의 게임이란 사실을 점차 깨닫기 시작하면서 기대심리가 크게 줄어버린 까닭이다. 내 생각에 프로야구를 즐길 수 있는 시기는 응원하는 팀의 순위와 별개의 맥락으로 존재하는 것 같다.


어쩌면 그건 매 순간마다 벌어지는 야구의 개별적 변수들에 희로애락을 느끼는 때이다. 다시 말해 투수가 던지는 공 하나하나에 눈을 떼지 않고 스트라이크 판정과 타구 결과에 온 신경을 쏟는 시기. 야구에 미치면 바로 그 사소한 재미에 미치는지 모른다. 그렇게 야구에 흠뻑 빠졌던 날들을 후회하냐 묻는다면 전혀. 때로는 그렇게 난리 법석을 떨었던 시기가 오히려 그립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인생과 야구의 공통점이 있다면 그건 어디까지나 이 게임이 공평하지 않은 경계선 위에 놓인 채 진행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 불공평함을 직시하고 게임의 룰을 이해하게 될 때, 비로소 본격적으로 싸울 수 있다는 사실도. 인정하기 싫지만, 노력과 운으로 넘어설 수 없는 자본과 시간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싸움의 준비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전제조건이다.


 애석하게도 어쩌면 큰 틀에서의 경기 결과는 이미 정해졌는지 모른다. 문제는 그 싸움의 규칙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 그리고 이에 어떤 방식을 취할 것인가에 따라 뜻밖의 결과가 찾아온다는 사실을 <머니 볼>은 알려준다.



 빌리 빈의 오클랜드 어슬레틱스가 보여준 기적은 우연이 아닌 통계와 데이터를 참고해 모든 변수들을 배제한 결과이다. 이른바 뺄셈 뒤에 찾아온 행운이다. 그러니 때로는 예정된 패배에도 기꺼이 몸을 던져야 한다. 그래야 행운이 찾아올지 모르고 어쩌면 패배 속에 또다른 가능성을 발견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행운은 비관주의자에게 내리는 한 줄기 축복이다. <머니 볼>은 바로 그 이야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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