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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조일남 Apr 24. 2019

두 얼굴의 김윤석

영화 <미성년>



연기자 김윤석은 야심가다. 극의 비중에 상관없이 그는 언제나 자신이 중심이 되어야 하는 배우였다. (혹은 그러려고 기를 쓰는 배우처럼 보인다.) 낮은 목소리와 시종 피로에 찌든 눈과 어두운 표정의 얼굴은 속된 말로 극을 잡아먹는 그만의 방식처럼 보였다.

그런데 <미성년>을 연출한 김윤석은 야심가라기 보단 철저한 미니멀리스트에 가깝다. 여기서 그는 자신이 다루는 이야기가 작다는 것을 안다. 규모가 작은 서사를 다룰 때 사건을 억지로 크게 만들거나 주제를 부각하려는 시도는 무익하다는 걸 잘 아는 듯 보인다. <미성년>은 사건에 주목하는 영화가 아니라 그에 반응하는 인물의 감정선을 포착하는 영화다.

 주제를 관통하는 대사들이 종종 등장하지만, 이 영화는 말의 무용함이 너무나 잘 드러나는 영화다. 빛에 반사된 인물의 표정과 쉽게 벗어날 수 없는 상황 안에 갇힌 자가 겪는 무력감, 카메라가 한 공간 안에 잠시 멈춰 서서 바라보고 있거나, 혹은 동선을 뒤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정서를 이끌어낼 줄 안다고 그는 생각하는 것 같다.

<미성년>은 어떤 면에선 감정연기를 다루는 실험영화처럼도 보인다. 그건 <미성년>에 등장하는 형식들이 규칙적이라기 보단 꽤나 들쑥날쑥하게 격양되는 경우가 있고, 그런데 이 형식이 극의 리듬을 오히려 풍성하게 만드는 것 같아 종종 기묘하다.



 인물들 간 감정의 결이 굉장히 섬세한 영화라 조금 놀랐다. 어떤 면에선 연기자 김윤석과 연출자 김윤석은 서로 다른 사람이라 느껴지기도 했다. 누구보다 자기중심적인 연기를 펼치던 자가 자기혐오를 가득 품고 있는 이런 영화를 만들었다는 점에 그렇다. 특히 무책임한 가부장으로 등장하는 자신에게 서사를 제공하지 않는 냉정함에 그는 일종의 냉소주의자나 마조히스트처럼 보이기도 한다. 무엇보다 제도의 모순점을 건드리는 지점도 지나치지 않게 적정선을 유지했던 것 같아 연출자로서의 본인이 원하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영화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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