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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조일남 May 16. 2019

그러니 이 사랑은 해피엔딩이어야 한다.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


홍상수 영화 속 연애란 실패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지난한 활동을 지켜보는 일이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처럼 같은 순간을 두 번 경험하더라도 끝내 이뤄지지 못하지만 그래서 더욱 귀한 시간으로 남는 경우도 있고, <옥희의 영화>처럼 흐르는 시간 앞에 초라해져가는 주체와 그들이 겪는 혼란이 끝내 사랑하는 대상과 엇갈리고 마는 상실과 무력감으로 귀결되기도 한다. 그러니까 홍상수의 연애는 곧 베드엔딩이다.



 그런데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은 예외다. 이 작품은 일상을 살아가다 겪는 초현실적인 순간의 감정들을 연인간의 이별과 재회라는 사건에 투영시킴으로써 결국 뻔뻔한 기적의 형식이 사랑을 설득한다. 천연덕스러울 정도로 뻔뻔한 해피엔딩인데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그려낸 사랑엔 모종의 비밀이 있는 것 같고 그게 너무나 좋다.

 이야기를 따라가 보자. 화가인 영수(김주혁)는 여자 친구 민정(이유영)이 밤마다 술을 마시러 다닌다는 소문을 듣고 민정을 추궁한다. 민정은 부정하지만 영수는 그 말을 믿지 못하고 민정에게 욕을 한다. 여기서 둘의 관계는 단절된다. 크게 실망한 민정은 영수를 떠나고, 영수는 민정을 찾기 위해 동네 이곳저곳을 누비지만 두 사람은 만나지 못한다.

 이후에 영화가 들여다보기 시작하는 것은 두 개의 시간이다. 하나는 민정을 찾는 영수의 시간이며 두 번째는 민정, 혹은 자신이 민정이 아닌 다른 사람이라 말하는 누군가의 시간이다. 영수의 방황은 답답하기 그지 없다. 민정의 집과 직장을 찾아가기도 하며 가끔 민정의 신기루를 보거나 술에 취해 자기 잘못을 한탄하기 바쁘다. 그런데 이 방황을 바라보며 함께 겪기 시작하는 순간 영수에게 이입할 여지가 생긴다는 걸 부정할 수가 없다.

 문제는 영수가 아니라 민정을 닮은 누군가에 있다. 이때 등장하는 민정, 혹은 그를 닮은 누군가는 진짜 밤마다 술을 마신다. 게다가 영수가 아닌 두 명의 남자와 번갈아 만난다. 이것은 민정과 영수가 이별하게 된 계기였던 바로 그 소문이 우리 눈 앞에 펼쳐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영수의 추궁이 맞는 게 아닌가. 그럴 수도 있겠지만 영화는 그게 중요한 게 아니란 사실을 영수의 입을 빌려 말한다. 영수는 자신이 사랑한 사람을 믿지 못해 상처를 줬다는 것. 결국 자신이 보고 느낀 것이 아닌 남의 말에 의해 전해진 소문을 믿었기에, 민정을 잃었음을 깨닫는다. 중요한 건 말이 아니라 민정이다. 그렇기에 자신에게 찾아오는 유혹 앞에서도 조금 더 기다려보겠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기다리는 자에게 기적이 찾아온 걸까. 영화 마지막에 이르러 영수는 민정 혹은 민정이 아닌 누군가와 만난다. 이 영화의 기적은 그렇게 두 번 벌어진다고 봐도 좋다. 민정을 기다리던 영수에게 민정 혹은 민정을 닮은 누군가가 나타난 게 첫 번째 기적이라면, 자신이 민정이 아니라 말하는 자의 말에 곧이곧대로 모름과 존대로 응답한 영수의 응답도 어떻게 기적이 아니라 할 수 있을까. 그러니 사랑이 (다시) 시작한 건 필연이 아닐까.

 결국 요점은 여기에 있다. 연애에서의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려는 사사로운 시도가 결코 둘이 함께 있을 때의 좋음보다 결코 좋을 수 없다는 점. 영수는 그 사실을 깨닫고 민정 혹은 그를 닮은 사람에게 그 역시 모름으로 다가선다면 어쩌면 사랑이 부활할지도 모른다는 작은 희망에 몸을 던진 것이다. 이 재회이면서 재회가 아니고, 첫 만남인 것 같으면서도 처음이 아닌 형식의 현현이 결국 불가능할 것 같았던 단절된 사랑의 부활을 설득한다. 그 모습은 너무나 귀하고 귀엽닼 그러니까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은 해피엔딩으로 끝날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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