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화평론가 조일남 May 08. 2020

켄 로치의 카메라

<미안해요 리키>에 붙이는 첨언

 

 나는 <미안해요 리키>의 배급사가 원제인 <미안해요, 우리가 당신을 놓쳤네요(혹은 보지 못했네요)> 로 변경한 데에 적잖은 불만을 갖고 있다. 상당 수 배급사들이 이렇게 작품 제목을 자의적으로 바꾸는 경우가 허다한데 이 작품의 경우 <미안해요 리키>라는 제목으로 바뀜으로해서 카메라가 응시하는 대상에 관한 감정적 부채를 리키에 한해서만 축소시키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이 영화는 무엇보다 이 영화는 리키 만을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니라 리키 조차 놓치고 있는 대상에 관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 실마리는 리키의 아내 애비의 노동과 이를 바라보는 카메라에 근거할 것이다.


 근래의 켄 로치가 노동을 바라보는 방식은 지금 카메라 앞에 노동하는 인물의 행위 자체에 초점이 맞춰진 게 아니라 그가 관계맺는 사람과 시스템을 조망하기 위한 하나의 창으로 기능한다는 데 주목할 수 있을 것 같다. 예컨대 이 영화에서 아내 애비의 돌봄 노동은 노동 그 자체가 하나의 르포타주 문학처럼 소외계층을 비추는 하나의 카메라로 기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영화가 리키가 택배 일을 하는 동안 집의 내부를 들여다보지 않는 것과 애비가 고객의 집으로 들어가 돌봄을 하는 모습을 비춘다는 데 차이를 보인다. 리키의 노동은 배송이 완료되는 순간 고객과 관계가 단절되지만 애비의 경우는 노동의 심연에 소외계층과의 관계가 촘촘히 쌓여있다. 이는 그가 스스로 엄마가 되고싶다 아 밝힌 장면과, 그가 노동을 중단하지 못하는 사태에 직면한 경우를 동시에 고려하게 만든다. 어쩌면 <미안해요 리키>란 영화에서 정말 복잡한 그물망에 갇혀있는 인물은 리키가 아니라 애비일지 모른다. 애비의(혹은 그처럼 돌봄 노동을 하는 다수의 직원들에게) 노동이 멈춘다는 건 돌봄을 받는 이들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당혹스런 딜레마를 마주하는 게 플랫폼 노동이 가하는 이면의 폭력 이전에 가장 불편한 질문인 것 같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