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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조일남 Apr 09. 2018

뒤로 갈 수 있는 용기

<레디 플레이어 원>

 

 나는 스필버그가 <레디플레이어원>으로 말하고자 했던 바가 레이싱 시퀀스에 고스란히 압축돼있다.고 느낀다. 바로  ‘Back to’ 과거로 돌아가라는 의미이다. 아무리 첨단 장비로 무장하고 빠른 속도로 전진 해본들, 거대 기업에 의해 조련된 집단과 킹콩을 비롯한 괴물들을 피해 앞으로 가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이때 노동계급의 웨이드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은 이 게임의 승리가 아닌 룰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데 있다. ‘창조주는 정해진 룰을 깨기를 원했다’. 그렇게 그는 창조주가 이 구조를 만들게 된 기원을 찾아 도서관으로 간다. 웨이드가 '할리데이 저널'에서 얻은 힌트는 최대한 빠르게 뒤로 가야만 결승점에 다다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우리 자신과 과거를 돌아봐야만 앞으로 갈 수 있다. 속도가 진보를 보장해주는 시간은 끝났다. 이것이 스필버그가 <레디플레이어 원>으로 내세운 전언이다.



 이 환상의 후진이 가져다 준 시각적 스펙타클은 그야말로 압도적이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하 건 이들이 웨이드의 앞에 놓여 있던 벽을 피해, 경기장 구조의 내부로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준다는 점에 있다. 이때 웨이드가 쳐다보는 곳은 경쟁자들이 아닌 여태 그를 가로막고 있던 장애물들, 즉 게임의 룰이자 구조이다. 이제 구조를 꿰뚫고 지나가는 그를 킹콩과 공룡은 결코 구속하지 못한다. 스필버그가 선언한 아날로그 시대의 본격적인 서막은 바로 이 레이싱 시퀀스 안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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