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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조일남 Jan 09. 2019

소년의 변(辯)

<가버나움> 단평

 매매혼의 고리를 끊기 위해 부모를 법정에 세운 12살 소년 '자인'. 그를 온힘으로 지지하려는 연출자의 태도로 조심스럽게 <가버나움>을 정의내릴 수 있을 것 같다. 영화를 보고 난 뒤 뚜렷한 이유 없이 이 영화를 지지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곤경에 처한 아이를 바라보는 카메라의 온정 가득한 시선과는 별개로, <가버나움>이 그간 서구 언론이 다뤄온 중동이라는 장소의 이미지로부터 얼마나 탈피해 있을까. '죽음과 가까이 위치한 아이들, 곳곳에 테러의 위협이 숨겨진 장소' 라는 시선을 버리고 이 장소를 새로운 가능성의 영역으로 바라볼 지점을 영화가 형식적으로 마련했는지 묻는다면, 나는 달리 할 말이 별로 없어진다.


 슬로우 모션과 핸드 헬드 기법처럼 극적인 긴장감과 감각적 재현을 담당하는 요소들이 영화 속에 자리잡았다는 것은, 연출자가 저 장소와 얼굴들에 매혹됐으며 관객을 위한 시각적 낭만화에 기여하고 있지 않은지 의심해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이르러 영화는 저 아이들에게 구원이 필요하다 말하고 그것이 관객인 당신에 의해 이뤄질 수 있음을 넌지시 드러내지만, 우린 우리 스스로의 구원자도 될 수 없는 몸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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