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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조일남 Jan 28. 2019

미완으로 남을 일기

영화 <얼굴들>


 고등학교 행정실 주임으로 일하는 기선(박종환)은 우연히 축구부 학생 진수(윤종석)의 어려운 경제 사정을 알고 그에게 관심을 갖는다. 기선의 옛 애인 혜진(김새벽)은 회사를 그만두고 어머니의 작은 식당을 리모델링해 점심엔 식당으로, 저녁엔 카페로 꾸릴 야심찬 계획을 꾸린다. 두 달에 한 번 스카이다이빙을 하며 스트레스를 푸는 택배기사 현수(백수장)는 자신의 노동에 지친지 오래다. 이들은 간혹 둘씩 만나 이야기를 나누지만, 서로의 삶에 깊게 개입하지는 못한다.

 극적인 서사를 포기해서라도 인물의 시선과 감정선, 대상을 바라보는 카메라의 우직한 태도로 운동하는 영화들이 있다. <얼굴들> 역시 그렇다. 무너져가거나 사라진 서울의 건물들이 풍경쇼트로 등장하고, 이를 마주한 인물들은 원인 모를 불안에 괴로워한다. 결국 <얼굴들>을 지탱하는 힘은 이미지와 시간성이다.

 아마도 건축이란 하나의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하나의 세계라고 말해도 좋을듯 하다. 하나의 건물이 사라진다는 의미는 곧 한 세계의 소멸과 무관하지 않다. 반복되는 소멸과정을 바라보는 인물들에게 존재의 불안이 스며드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이들의 자아분열은 재개발과 재생산업의 일환으로 인해 흉물이 돼버렸거나 사라진 건물들에게 겪는 일종의 동일시 현상이다. 모든게 사라져가는 세상에서 이들은 자신의 일기조차 제대로 적을 수없다. 스스로를 언어로 묘사하는 데 실패한 이들은 결국 타인의 욕망을 모사하거나 무언가를 끊임없이 소비하는 데서 존재의 의의를  갈구한다. 이렇게 <얼굴들>이 비추는 얼굴은 인물이 아닌 서울이라는 도시의 맨얼굴이다.

 이 영화를 보던 장소가 하필 을지로 근처의 인디스페이스 였던 까닭에 이런 생각이 더욱 깊어졌는지 모르겠다. 분명한 사실은 <얼굴들>의 질문은 극장을 빠져나와서도 지속된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서울을 바라보고 있는 카메라의 역할을 고민하게 만든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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