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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조일남 Feb 10. 2019

불화하고 어긋나는 관계들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단평

<더 페이버릿>은 말 그대로 앤, 사라, 애비게일 세 사람이 벌이는 욕망과 탐닉을 위한 은밀한 무대로 보인다.

여왕 앤의 궁전은 전장이자 일종의 미로다. 프레임 가운데를 기점으로 카메라 왜곡을 통해 선형적인 공간을 의도적으로 비튼다던지, 360도로 회전하는 카메라와 사선에서 전체 공간을 바라보는 제삼자의 시선도 이 궁전에 출구는 없다는 의미처럼 다가온다. 게임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앤의 궁전으로부터 나갈 수 없다는 기호일지도 모르겠다. 인물의 모든 동선이 결국 여왕의 방으로 향하는 구성도 각자의 욕망을 포기할 수 없는 사라와 애비게일이 앤의 방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운명임을 반증한다.


총과 과녁의 이미지가 이 영화를 지배하는 인상이 강하다. 세 사람의 관계도 이에 비유할 수 있다면 애비게일은 성 안의 많은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자다. 하지만 아무도 그를 명중시킬 수는 없다. 앤은 모든 목표물을 쟁취할 수 있는 힘이 있지만 스스로 조준을 포기하는 인물이다. 사라는 모든 과녁을 명중시키는 사수였으나 끝내 단 한 발을 성공시키지 못한다. 말하자면 이 영화는 불발의 영화다.


그래서 재미있는 점은 이 영화에 등장하는 디졸브 장면에 있다. 통증을 겪는 인물의 몽타주가 흐릿해지면서 서로 포개어지는 장면은 영화의 형식으로 매개된 다분히 섹스에 관한 은유다. 그리고 영화 말미에 이 형식을 재회했을 때, 이미지가 끝내 불화하고 만다는 점에서 <더 페이버릿>은 실패하고 마는 관계와 섹스에 관한 슬픈 우화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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