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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섬 Oct 29. 2020

중심잡기

그동안의 이야기

Image by Blanka Šejdová from Pixabay

이번에도 꽤 오랜 기간 동안 글쓰기를 놓고 살았다. 이번에'도'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계획을 세우고 꾸준하게 지키고 있는 습관들은 몇 개나 될까. 고작 몇 달 전 스스로 쓰는 글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자 다짐하던 모습이 썩 부끄럽다. 그럼에도 핑계를 좀 대자면, 하고 싶은 이야기가 고갈된 상태였다. 내 생각을 담은 종이로 된 인쇄물을 내고 싶다는 생각에 대학교 마지막 학기에 급하게 신청했던 독립출판 프로젝트. 그 프로젝트에 지난 몇 년간의 낙서들을 모두 쏟아내고 난 뒤, 일종의 '번아웃' 상태를 겪게 된 것이다. 아니 라이터스 블록(Writer's block)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속에서 뒤죽박죽이 된 이야기들을 한 번 보기 좋게 내놓은 뒤에는, 다시 내 속을 채워줄 뒤죽박죽 한 어떤 것들을 채우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동안 세간에는 여러 가지 큰 사건들이 터졌다. 그중 큰 사건이라면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변한 우리의 삶이었고, 변화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꽤 많은 노력들이 필요했다. 어쩌면 인류가 또 하나의 국면을 맞는 영화 같은 시간들이었다.


전 세계의 사람들이 이번 사태로 인해 어떠한 종류든 어려움을 겪었으리라고 생각한다. 바이러스의 전파를 막기 위해 가게들은 때때로 영업 중단을 해야 했고, 학생들은 학교에 가지 못하고 집에서 온라인으로 수업을 들어야 했으며, 회사원들도 출근 대신 집에서 업무를 처리하는 법을 배워야만 했으며, 취업 준비생들은 더욱 좁아진 취업문에 막막함을 느껴야만 했다.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거리를 두게 되면서 팬데믹 이전의 삶을 그리워하게 되었다. 우리는 없던 것이 생길 때보다 있던 것이 없어질 때 더 많은 것들을 깨닫는 경향이 있다. 

나는 마지막 학기에 이 사태를 겪기 시작하면서, 처음에는 상황이 이렇게까지 커지리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 채 당장 왕복 3시간이 걸리는 학교를 통학하지 않아도 된다는 눈앞의 사실에 기뻐했다. 그때는 몰랐다. 큰 핑곗거리 앞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균형을 잃은 채 침몰하게 되리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통학은 막상 학교를 다닐 때는 하루에 3시간씩 손해 보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하루에 3시간씩 소비하는 만큼 '학교에 가서 그만한 가치의 배움을 얻어야겠다'는 다짐을 하는 시간이기도 했으며, 학교에 오고가며 마주치는 사람들(특히 학생들)을 보며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무형의 분위기를 조성해주는 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컴퓨터를 통해 수업을 듣는다는 것은, 게임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고양이에게 실뭉치를 주고 그것을 헝클어트리지 말고 붙잡고만 있으라는 소리와 같았고, 대학의 마지막 학기라는 인식과 각오는 저 멀리로 가고 그렇게 한 학기가 지나게 되었다.


목표가 없는 사람은 발전이 없고, 허송세월을 보내기 십상이다. 학창 시절부터 생각해온 오래된 생각이다. 막연하게라도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겠고, 어떠한 삶을 살아야겠다는 인생의 질의응답에 대한 답변을 준비해두지 않는다면 언젠가 막다른 길에 들어서 목표가 없는 삶을 살게 된다. 나는 이렇게 내가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또 한 명의 사람이라는 독립 개체로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계획과 이를 실행하기 위해 준비하는 일련의 과정을 '중심 잡기'라고 부른다.

아노미 상태에 대해 배운 적이 있다. 급격한 사회변동의 과정에서 종래의 규범이 약화 내지 쓸모없게 되고 아직 새로운 규범의 체계가 확립되지 않아서 규범이 혼란하거나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지금의 사회가 딱 그런 것 같다. 좋게 말하면 과도기, 나쁘게 말하면 이례 없던 혼란의 시대. 이런 시대일수록 '중심 잡기'의 중요성은 커진다. 앞으로의 사회는 어떤 방향으로 변화해 나갈지 전혀 예측할 수 없다. 세상은 끊임없이 나를 넘어트리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흔들어 댈 것이고, '중심 잡기'가 되어있지 않는다면 조금의 흔들림에도 무너져 그저 흘러가는 대로, 밀려나는 대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시간이라는 파도의 일부분에 흡수되어버릴 뿐이다. 물론 그러한 삶이 나쁘다며 비판하고자 하는 의도는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힘겨운 매일의 페이지를 마친 후 이 세상 떠나고자 할 때 무엇을 위한 몸부림이었는지 정도는 알고 가야 후회는 없지 않을까. 목표가 없이 살아온 삶은 그냥 생존일 뿐이다. 이 글 또한 무너진 균형을 회복하려는 내 '중심 잡기'의 일환이다. 모두가 우리를 넘어트리기 위한 세상의 큰 한 수인 바이러스를 극복하고, 생존 이상의 무언가를 향해 나아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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