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사는 도시공학자의 영국 시골 탐방기(5)
영국 시골은 시골이 아니다
필자는 지난 6월 12~21일 영국 여행을 다녀왔다. 이번 영국 여행은 인구소멸, 지방소멸이 사회적 이슈가 된 이 시점에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영국 농촌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을 풀기 위해 떠난 여행이었다. 필자는 최근 10년 간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토트네스, 다팅턴, 피블스, 갈라쉴즈를 방문했다. 현지인들 속에서 동네를 걷고, 현지인이 방문하는 식당을 가고,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슈퍼마켓과 시장을 이용하고, 현지인들이 타는 버스를 타며 보고 느꼈다. 과연 무엇이 영국의 농촌인구를 늘어나게 하는지, 농촌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삶은 어떤 모습인지 현장에서 확인해 보았다.
필자가 방문한 영국 시골은 인구 1천~1만6천 명 규모의 토트네스(Totnes), 다팅턴(Dartington), 비블스(Peebles), 갈라쉴즈(Galashiels) 4개 지역이다. 런던에서 버스로 3시간 이상 거리, 인근 대도시에서 버스로 1~2시간 거리에 위치한 지역들이다. 4개 지역을 탐방하면서 주변 15여 개 지역들로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필자가 영국 시골을 탐방하고 내린 결론은 “영국 시골은 시골이 아니다”는 것이다. 한국은 시골은 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지역으로 인구수가 적고 개발이 덜 된 곳, 1차 산업 위주의 생산 활동이 주가 되는 곳으로 해석한다. 또, 농촌은 주민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는 지역, 어촌은 어업에 종사하는 지역을 말한다. 하지만, 영국 시골은 인구수는 적지만 개발이 덜 된 곳도, 농업과 어업에 종사하는 지역이 아니었다. 단지 인구 규모는 작지만 사람들의 주거와 소비생활, 대중교통이 편리한 생활환경을 가진 지역이었다. 영국 시골의 생활환경은 영국 도시의 생활환경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실제로 필자가 런던 시내에서 3일을 보냈던 주택가의 주거환경, 동네 슈퍼마켓과 상점들과 비교해 크게 차이가 없었다.
저렴하고 양질의 공공주택
영국은 세계에서 산업화와 도시화를 가장 먼저 경험한 나라이다. 이미 19세기말부터 주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뉴타운을 조성해 왔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도농현상으로 농촌인구가 감소하다가 1970년대 은퇴자들이 귀농을 하는 역도시화현상이 나타나면서 다시 증가하였다. 또, 1990년대 초반부터 농촌이 도시민들을 위한 주거공간으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이유는 산업화와 도시화로 도시의 주거환경이 악화되어 중산층들이 도시 근교의 전원지역을 선호했기 때문이다. 영국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도시통근자와 은퇴자 등 유입주민들이 증가하면서 기존 원주민들이 주택 구입에 어려워질 것을 방지하고, 젊은 층의 농촌이탈을 방지하기 위해 저소득층을 위한 임대주택, 분양주택 등 공공주택의 공급을 늘였다. 영국 정부는 저소득층들이 구입 가능한 가격의 주택을 공급하되 도심부에 신규 주택을 공급할 것을 장려했다. 영국의 신규 주택 공급 정책은 디스트릭단위(10만 명 규모의 지방자치단체)에서 수요를 조사하고 카운티단위(100만 명 규모의 지방자치단체)에서 주택 공급 계획을 수립하고 중앙정부가 이를 통합하여 관리한다.
이런 영국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주택공급 정책 덕분에 영국 농촌지역의 인구가 점차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또, 도심부에 신규 주택을 공급한 효과로 도심부 상업지역을 중심으로 일정 거리, 일정 공간에 주택들이 밀집해 있다. 또, 공원, 어린이놀이터 등 편의시설이 풍부해 주거환경의 질이 높다.
소비력이 높은 여성들을 겨냥한 쇼핑환경
영국 시골의 쇼핑 공간은 소비자의 소비 수요와 소비 욕구를 철저하게 끌어내어 소비를 하게 만드는 쇼핑 환경이었다. 굳이 대도시로 나가지 않고, 시골이라고 소비 수요와 소비 욕구를 자제하지 않고, 모든 연령대의 주민들이 편리하게 쇼핑을 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인구 1만 6천명 미만의 영국 시골 생활권 중심에는 편리한 쇼핑 공간이 있었다. 대형 슈퍼마켓에서 신선식품, 과일, 야채, 조리식품, 반조리식품, 즉석식품, 디저트 등 다양한 식료품을 판매하고 있어 아이를 키우는 여성, 일하는 여성, 혼자 사는 노인들이 편리하게 식사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최신 유행의 아동과 성인 의류매장, 다양한 생활용품 전문매장이 있어 일상생활에서 필요로 하는 소비 수요를 생활권 내에서 충족할 수 있었다. 또, 청소년들이 학교 수업 후에 즐길 수 있는 다양한 간식과 친구들과 수다를 떨 수 있는 공원이 있었다. 또, 편리한 쇼핑환경에는 광역대중교통 서비스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밀집 주거지와 버스 노선이 직접 연결되어 있어 인근 타 지역 주민들도 15~30분 마다 운행하는 버스를 이용해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고 상점거리에서 쇼핑하고 할 수 있었다. 영국 시골의 상권은 근검절약하는 노인층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소비력이 높은 30~40대 여성들이 충분한 쇼핑을 할 수 있도록 쇼핑환경이 조성되어 있었다.
시골-도시 광역생활권과 광역대중교통 서비스
영국 시골의 인구 1천명~1만6천 명 규모의 지역들은 주변 도시들과 통합된 광역생활권을 형성하고 있었다. 인구 1천명 미만의 지역, 인구 1~2만 명의 지역, 인구 10~20만 명의 지역들이 서로 서로 연결되는 그물망형 구조의 광역생활권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물망 구조의 광역생활권은 지역 상호 간의 통학, 통근, 쇼핑 등이 가능하도록 광역버스 서비스로 연결되어 있었다. 또, 광역버스는 종점과 종점을 운행하는 형식이 아니라 시내버스처럼 경유 노선 정류장에 모두 정차하는 운영방식으로 운영하여 주민들의 지역 간 이동이 가능하게 했다. 영국 시골 광역버스는 기초자치구차원이 아니라 주차원에서 광역대중교통 서비스 계획을 통해 버스회사와 협력하여 운영하고 있었다. 토트네스, 다팅턴의 경우에는 데본주가, 피블스, 갈라쉬즈의 경우에는 스코티쉬보더주가 광역버스 서비스를 총괄하고 있었다.
영국 시골은 20~30대 여성이 살기 편한 도시
영국 시골은 시내 중심부에 편리한 쇼핑공간이 있고, 쇼핑공간을 중심으로 1~2km 거리에 저렴하고 양질의 주택이 밀집해 있다. 초등학교는 주거지 가운데 위치해 있고, 중·고등학교는 1~3개 지역마다 배치되어 있다. 광역대중버스 서비스가 있어 시내 혹은 타 지역으로의 이동이 편리하다.
필자는 영국 시골 인구가 늘어날 수 있었던 환경적 요인으로 저렴하고 양질의 주택, 편리한 쇼핑환경, 광역생활권과 광역대중교통 서비스 3개 요인을 꼽았다. 몰론 3개의 요인 외에 일자리, 교육환경, 복지 등 다른 요인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주택, 쇼핑환경, 광역생활권과 광역대중교통 서비스는 다른 요인들과 비해 가장 기초적인 생활권 인프라로 볼 수 있다.
저렴하고 양질의 주택, 편리한 쇼핑환경, 광역생활권과 광역대중교통 서비스는 아이를 낳고 키우는 20~30대 여성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환경이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여성이 살기 편한 환경은 당연히 노인들도 살기 편한 환경일 것이다.
필자는 방문했던 토트네스, 다팅턴, 비블스, 갈라쉴즈에서 많은 20~30대 여성들을 보았다. 유모차를 끌고 거리를 걷는 모습, 유모차를 동반해 버스를 이용하는 모습, 학교 수업 후 아이를 픽업하는 모습, 슈퍼마켓에서 쇼핑하는 모습, 식당에서 아이들과 외식하는 모습 등 시내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농촌 인구감소 해결의 열쇠는 과연 누구에게 있을까?
지금 한국의 농촌 환경은 어떠할까? 편리하게 살 주택이 없고, 쇼핑을 할 곳이 없고, 외식을 할 곳이 없고, 대중교통 서비스가 없어 불편한 곳이 농촌이다. 농촌에서 산다는 것은 그저 불편함에 익숙해지거나 불편함을 감수하며 사는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과연 인구 유지가 가능할까? 새로운 인구 유입이 가능할까? 인구소멸 정도를 측정하는 지표는 20~30대 가임 여성의 인구수이다. 지금의 농촌은 20~30대 가임 여성들이 살 수 있는 환경인가?
농촌 인구감소 문제는 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는 과제가 아니며, 지방자치단체 단독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과제도 아닐 것이다. 저렴하고 양질의 공공주택 공급, 광역대중교통 서비스는 광역생활권을 이루는 지방자치단체들과 광역지방자치단체와의 협력으로 해결해야할 것이다. 또, 편리한 쇼핑환경은 민간영역이기는 하지만 공공차원의 중장기 과제로 해결해야할 부분도 있다.
진안군의 인구감소 문제는 진안군만의 대응으로만 해결하기에 분명 한계가 있을 것이다. 광역생활권으로 묶을 수 있는 진안군, 무주군, 장수군, 완주군, 전주시, 전라북도특별자치도가 함께 고민하고 협력하여 풀어야할 과제가 아닐까한다.
- 필자는 50대 초반 여성이며, 부산, 서울, 경기지역에 살다 진안으로 이사 와 12년째 살고 있다. 도시공학 박사이며, 농촌마을계획, 생태관광 및 농촌관광, 공동체 역량강화, 환경 관련 정책을 연구하며, 주민참여 마을만들기를 지원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