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선준 Aug 13. 2019

남편이 돈 버니까
일 안 해도 되잖아요?

나이 듦의 심리학


여성이 정년까지 일한다는 것


또래보다 젊어 보이는 아오바 씨는 쉰다섯 살로, 오랜 세월 중학교에서 보건체육교사로 일해왔다. 지금은 남편과 단둘이 살고, 딸이 하나 있지만 사이가 그리 좋지 않아 딸이 결혼해 홍콩으로 간 뒤로 거의 연락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아오바 씨 남편은 장기 항로를 타는 선원으로, 한번 항해를 나가면 몇 개월 동안 돌아오지 않는다. 가족들과는 어떻게 지내냐고 물었더니, “가족이 있지만 거의 혼자 사는 거나 마찬가지예요”라고 씁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학교 체육선생님이라니 대단하시네요?” 문진표를 보며 내가 묻자, 아오바 씨는 “그렇지 않아요”라며 격하게 고개를 저었다.


“젊었을 때 우연히 소프트볼을 하게 됐고, 대학에서 자연스럽게 교직이수과정을 듣게 되었어요. 그렇게 해서 체육선생이 되기는 했는데, 교감 시험이나 교장 시험을 안 봤기 때문에 지금까지 쭉 평교사입니다.”

아오바 씨의 고민 또한 “이 직장을 정년까지 다녀도 괜찮을까요?”였다.





트라우마를 안고 산다는 것


“학습지도요령이 개정되면서 교육과정에 댄스 수업이 의무화된 건 아시죠? 심지어 이제까지 했던 포크댄스 같은 게 아니라, 힙합을 하게 됐어요. 그런데 저는 그런 춤은 정말 못 추거든요…….”

“힙합이 젊은 취향의 춤이라서 조기퇴직을 생각했다고요?”


나는 무심결에 “어머, 설마 그럴 리가”라며 웃고 말았다.

그러자 아오바 씨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물론 춤 자체를 제대로 가르치지도 못하지만, 댄스 수업을 할 때마다 트라우마가 되살아나요. 홍콩에 간 딸이 원래 댄스를 좋아했어요. 그 길로 나가고 싶다고 할 정도였는데, 제가 못 하게 했거든요. 그러고 나서 딸과 관계가 안 좋아지더니, 결국에는 딸이 제 곁을 떠났어요. 그래서 힙합 음악만 들어도 딸 생각이 나고, 너무 힘들어요…….”


그런 사정이 있으셨구나. 나는 내 태도가 경솔했음을 사과했다. 이어서 “하지만 직업이니까 따님의 일은 떼어놓고 생각하시면 되지 않을까요?”라고 말해봤지만, 아오바 씨는 진지한 성격이라 “그렇게 한다면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을 거예요. 아이들에게 무언가가 전해지도록 제대로 가르치고 싶어요”라고 대답했다.





남편이 부자니까 일 안 하셔도 되잖아요?


게다가 동료의 매정한 말도 아오바 씨에게 상처가 된 모양이다.

어느 날, 다른 교과 담당 젊은 여선생에게 자세한 이야기까지는 하지 않고 “댄스는 나랑 안 맞아. 이제 그만둘까? 젊은이들 시대잖아”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자 그녀의 대답은 이랬다.


“아오바 선생님은 남편분이 외국 항로도 타시고 부자니까, 무리해서 계속 일하지 않아도 되잖아요. 취미 삼아 문화센터에서 체조 같은 것 가르치면서 느긋하게 사모님 생활하시면 어때요?”


아오바 씨는 이 말을 듣고 심장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고 한다. 물론 돈도 중요하지만 본인은 결코 돈 때문에 일한 게 아니었다. 게다가 지금 학교에서도 자기 나름대로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해 열심히 일해왔다. 하지만 자기보다 어린 선생이 “돈이 없는 것도 아니면서 언제까지 일하려는 거야?”라고 비난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아오바 씨는 그날 밤부터 잠이 오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경험 또한 동년배 남성은 그다지 하지 않을 것이다. 설령 아내가 일을 해서 돈을 번다고 해도, 60세 전후 남성에게 “왜 계속 일해? 그냥 그만두고 편하게 살아”라고 말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여성이 정년까지 일하면 ‘돈 때문’이고, 그게 아니면 일찌감치 그만두는 것이 당연하다는 사고방식이 같은 여성들 사이에서도, 혹은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여전히 남아 있다.


나는 아오바 씨에게 “아무리 힙합을 못 춰도 아오바 씨 같은 선생님이 열심히 가르쳐준다면, 학생들이 그 모습에서 무언가 배울 거예요. 꼭 정년까지 계속 일하세요”라고 말했다.





여성이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


다른 사람으로 대체할 수 없는 요직이 아니더라도, 현재의 IT 기술과 그 기술을 이용한 업무를 따라가지 못하더라도, 혹은 경제적 사정이 절박하지 않더라도, 여성 또한 지금 다니는 직장에서 정년까지 일할 수 있다.


여성이 일을 하는 것, 일하고 싶어하는 것은 ‘미안해할 일’도 아니고 ‘부끄러운 일’도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주 훌륭한 일’도 아니다. 이는 그저 ‘당연한 일’이다.


나 또한 대학과 병원에서 “이제 정년입니다”라는 말을 듣는 그날까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내 자리에 꼭 붙어 있을 것이다.






일하는 사람은 모두 동등할 권리가 있다


여성은 정년퇴직 연령에 관해서도 놀랄 정도로 차별을 받았다. 그 예로, 1969년에 있었던 한 재판의 판결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는 한 여성 사원이 회사의 정년이 ‘남자 55세, 여자 30세’로 불공정하다며 회사를 상대로 고소한 재판이었다.


여성 정년 30세. 요즘은 대학원 석사과정, 박사과정을 거치고 서른 살에 사회인이 되는 여성도 드물지 않다. 그러나 당시에는 중학교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직한 여성 사원이 “이제 정년입니다. 수고 하셨어요”라는 말을 들으며 서른 남짓에 회사를 그만두어야 했던 것이다.


재판의 판결은 “여성을 차별하고 현저한 불이익을 주는 본 건의 정년제는 매우 불합리하고 미풍양속에 반하기에 무효로 한다”라며 여성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런데 회사는 그 판결을 따르기는커녕 항소했고, 3년 뒤 합의에 이를 때까지 재판을 계속했다.


그 후에도 ‘여성 정년은 50세’, ‘기혼 여성의 정년은 35세’ 등 여성의 정년에 대한 남녀차별에 이의를 제기한 재판이 몇 건이나 계속되었다. 그럼에도 여성의 정년이 남성보다 낮거나, 남성과 다른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위법·무효라는 사실이 사법계의 상식이 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실 1985년에 성립된 고균법에도 정년에 관한 언급은 전혀 없다. 그 이후 “퇴직 권유, 정년, 해고, 노동계약 갱신에 대해 노동자의 성별을 이유로 차별해서는 안 된다”라는 내용이 법률로 정해진 것은 무려 2006년으로, 고균법이 개정되면서였다.


이처럼 여성이 남성과 마찬가지로 정년까지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이 불과 얼마 전이다. 어쨌든 여성의 정년이 보장된 덕분에, 이후 취직한 여성들은 30~40대가 되어도 일을 계속할 수 있었고, 그녀들은 이제 50대가 되었다.




마흔 너머를 준비하는 여자들의 모든 고민을 담다

30년간 마음을 공부한 일본 최고 정신과 전문의의

마흔 이후 새롭게 시작되는 삶에 관하여


<나이 듦의 심리학>


나이 들어 무언가 새로 시작한다는 것에는 각별한 기쁨이 있다.
어쩐지 새로운 날개를 얻은 기분이다.




*이 글은 <나이 듦의 심리학>에서 발췌했습니다.


도서 보러 가기

https://bit.ly/2OQOKZu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