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너는 노땡큐
후배가 심각하게 자신의 진로를 고민하고 있었다.
숫기가 없고 내성적인 성격인데(그렇다고 사회생활을 못 할 정도는 아니고요), 메인 작가 언니가 자꾸 나서야 하는 일을 자기에게 시킨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출연하는 연예인한테 가서 말 걸면서 기분 좀 좋게 만들라고 하거나, 회식할 때 분위기 좀 띄우라고 하거나, 길거리의 아무나 붙잡고 일반인 섭외 좀 해오라고 하거나, 회의할 때 활발하고 시원시원하게 아이디어 좀 팍팍 내라고 하거나, 아무튼 그런 밝고 명랑하고 적극적인 태도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하나 이 후배는 타고나길 소극적인 성향으로 태어났고, 대신에 앉아서 자근자근 글 쓰는 것을 좋아하여 작가가 되었는데, 글보다 성격을 더 중요시하는 이 바닥에서 살아남을 자신이 없다는 것이다.
후배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니 과거의 나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나 역시 소극적이고 내성적이고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라, 방송작가라는 직업이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은 아닐까 고민이 많았다. 잠깐이라도 이목이 집중되는 게 싫어서 상 받는 것도 너무너무 꺼려하는 나는, 그저 어디서든 있는 듯 없는 듯 일하는 게 꿈이었을 정도니까.
물론 밝고 명랑하고 쾌활하며 쿨하고 누구하고나 어울리면서 뒤끝 없고 세상을 늘 긍정적으로 살고 주위 사람 기분 잘 맞춰주면서 앞에 나서서 말하는 것이 두렵지 않고 아이디어가 늘 반짝반짝 떠오르고 그래서 자신 있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며 회의 분위기를 유쾌하게 이끌면 좋기야 하겠지. 젠장.
따지고 보면, 내성적인 사람은 사회생활하기 힘들다는 말도 결국은 외향적인 사람이 자기 기준에서 지어낸 말 아닌가?!
따라서 나는 내성적인 사람에게 함부로 외향적으로 바꾸라 마라 하는 사람들의, 조언으로 가장한 폭력을 강력히 규탄하는 바입니다! 라고 주장하지는 못하겠다. 왜냐하면 나는 내성적이므로.
하지만 적어도 이제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자신을 원망하거나 탓하지는 않기로 했다. 이런 성격도 있고, 저런 성격도 있고, 내 성격은 그 수많은 성격들 중 하나라고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나는 후배에게 성격 때문에 방송작가를 포기하라는 말은 하고 싶지 않다. 대신 남들과 다른 노력은 필요할 수 있겠지. 예를 들어, 회의 시간에 여러 사람 앞에서 말이 잘 안 나온다면 페이퍼로 작업해서 돌리는 방법도 있겠고(오히려 이렇게 하면 준비 많이 해온 것처럼 보입니다. 경험담), 연예인 앞에서 혼자 말하는 게 어색하다면 질문을 던지고 잘 들어주면 된다(연예인 중에서 말 걸면 오히려 싫어하는 출연자도 많아요. 경험담)
대신 받아들이고 다른 노력을 하자. 외향적인 것들이 못하는 노력을! 내성적인 사람들이 잘하는 노력을!
전국의 내성인들이여~ 일어나라~~~~
함부로 내 인생에 끼어들어 나를 흔드는 사람에게
속 시원히 날려주고 싶은 말,
“이제 너는 노땡큐!”
*이 글은 <이제 너는 노땡큐>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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