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뒤덮을 만한 공이 있고 수고로움이 있어도
채근담, 前集_018.수고로움을 뽐내지 말고 허물은 뉘우쳐라
세상을 뒤덮을 만한 공이 있고 수고로움이 있어도
자랑하는 말인 ‘뽐낼 긍(矜)’자 하나를 당하지 못한다.
하늘을 가릴 만큼 가득 찬 허물이 있다 하여도
스스로 되돌아보는 ‘뉘우칠 회(悔)’자 하나를 당하지 못한다.
蓋世功勞, 當不得一箇矜字.
개세공로, 당부득일개긍자.
彌天罪過, 當不得一箇悔字.
미천죄과, 당부득일개회자.
018.功矜罪悔.
018.공긍죄회
[차인 생각]
공이 있다고 떠들지 않는다. 죄가 있으면 그 허물을 뉘우칠 수 있어야 한다. 채근담다운 말이다. 쉬운 듯하고, 많은 이들이 지니고 있는 덕목이다. 어쩌면 어려서부터 윗사람들께 참 많은 경로를 통하여 유사한 말을 듣고 자란 셈이다. 어린 나이에도 이런 류의 내용의 말을 친구들과 나누었던 기억이 새롭다. 아마 겸손을 미덕으로 듣고 배우고 가르쳤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겸손이라는 말이 이렇게 곳곳에 서로 다른 얼굴을 하고 나타날지 몰랐다. 얼굴을 달리하며 포장을 뜯으면 또 다른 포장이고, 그 속에 또 겸손이라는 말이 자리하고 있다. 공을 세우는 일들로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그 공을 자랑하지 말라는 말이다. 하기야 그 공을 세우는 과정에 또 얼마나 많은 죄과를 치를만한 상황에 처했을까. 그러니 그 죄과 역시 스스로 뉘우쳐야 한다. 시작이 있으면 과정이 있다. 그 시작과 과정에서 공을 세우는 일에 대한 생각들은 애초에 지운다. 차를 마시듯 그냥 생각 없이 마시면 된다. 차의 뒷맛이 어쩐지 조차 잊고 사는 일이 허다하듯이, 일상에서 살아가는 꿈틀거림이면 된다. 공은 무슨, 살아가는 꿈틀거림이 내게 왔으니 고마울 뿐이다.
2011년 6월 15일. 온형근(시인, 캘리그래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