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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형근 Feb 15. 2018

궤적 하나 강물 앞에

계절 하나를 먼저 사용한다

어느덧 나설 때다.

스물여섯 구월에 입직 하여 얼추 한 세상을 열고 여기까지 흘렀다. 열여섯에 녹차로 시작한 차와의 인연만 들고나가는 모양새 없다. 서른여섯에 시인으로의 삶을 시작했고, 마흔여섯에 몸담고 있는 조직의 추한 몰골 앞에 마땅히 손을 털고 유랑의 길로 나섰다. 그러다 쉰여섯 되어서야 비로소 이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차맛은 더욱 깊어졌다.


강물 앞에 스스로 마주한다.

쉰여덟부터는 세지 않기로 한다. 지나감이 빠르다. 그래서 앞으로의 사 년을 사계절로 바꾼다. 그러니 무술년은 봄이다. 1/4분기인 셈이다. 일 년을 한 계절로 치환하겠다는 작정이다. 흐름이 빠르기도 하지만 소중하기에 그렇다. 올해가 봄이니 그에 걸맞게 계절의 흐름에 올라탄다. 내년의 여름에는 또 그에 걸맞은 계절감을 살아갈 일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큰 강

을 건널 일이다. 그리하여 나는 강을 건넌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한다. 파도가 찾아올 때 서핑을 즐겨야 한다. 바람 앞에 마주 선다. 그렇게 매일 하루를 시작한다. 하루는 늘 그 자리에 그대로 일 테고, 나는 다만 그 하루를 시작할 뿐이다. 찻물을 올리고 차를 우려 아무렇지 않은 하루의 시작을 그러하도록 물린다. 또 다른 궤적을 그려야 하기에 무술년부터 나이 세기를 계절로 바꿨다. 이름하여 '봄 강'이다. 봄 강, 여름 강, 가을 강, 겨울 강으로 정년을 기다린다.


네 개의 강물과 정결하게 어울린다.

그러면 어느덧 노 저어 나갈 준비가 완료된다. 또 하나의 강 앞에 서야 한다. 쉰일곱을 살면서 쉰여덟의 셈을 멈추고 네 개의 계절을 구축하였으니, 예순둘의 한나절은 매혹적 이리라. 정 4개의 강을 건너면 그때부터는 온전히 방해 없이 한 가지씩 미비했던 일을 정리하고 마무리한다. 남은 삶이 프로젝트이다. 나이도 계절도 없이 프로젝트의 이름으로 살면 될 일이다. 찻물 식고 차도 맹맹해지면 찻자리를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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