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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형근 Apr 05. 2018

하루에 세 나절 살기

단락 짓고 쪽잠 자고 차 마시기

하루를 단락 짓는다.

저녁 시간부터 훈련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취침 시간이다. 10시 이전에 자야 한다. 그래서 이게 몇 사이클 지나 반복되어야 한다. 나는 국화주를 이용한다. 한 잔의 국화주는 부드러운 잠으로 안내하는 묘약이다. 해미읍성에서 나오는 국화주가 야생 들국화로 만들어 좋다.


첫 단락 시간을 잘 운용한다.

혼자서 잘 놀 수 있는 가장 흥미 있는 프로젝트에 매달린다. 나는 필기류 정리, 그중에서도 만년필 놀이가 좋다. 컨버터와 잉크 카트리지를 정리하고, 색상별로 맞추고, 컨버터에 잉크 바꿀 때는 식구들 깨지 않도록 조심한다. 이렇게 연필 깎는 시간으로 쓰다가 보면 기어코 단락의 운용 내용이 터진다. 나는 주로 글을 쓴다. 사유의 지평을 주체적으로 이끈다. 그래서 내 사유가 된다. 주로 연재 글을 잇는 편이다.


두 번째와 세 번째 단락은 수용의 미학이다.

잠깐 걷거나 쪽잠에 맡긴다. 보통 하루는 오전, 오후의 두 단락으로 나뉘는데, 오전과 오후는 같은 무게를 지녔다. 그러나 새벽 한 나절을 이미 보냈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잊어야 한다. 오전의 시작은 차를 우린다. 차 명상으로 하루를 예열한다. 고요하고 깊은 시간이다. 생각의 흐름을 짚어내고 자르고 끊고 오린다. 차 우림 하느라 몸 부지런히 움직인다. 나는 물놀이라고 여긴다. 물을 적셔가며 돌아치면 살만한 기쁨의 기운이 세 번째 단락인 오후까지 내공으로 이어진다.


네 번째 단락에서 붙잡아 매는 게 어렵다.

이때는 오래된 습관에서 자유롭지 않다. 오늘쯤은 그동안 못 만난 친구라도 꼬드겨야겠다. 단골 정해 수시로 보자던 생각을 접는다. 내가 찾아가는 일로 이어져야 한다. 일주일에 2번, 아이들과 함께 하는 요일이 정해졌다. 그 외의 요일는 네 번째 단락으로 준비한다. 후반기부터 새로운 일정의 저녁 단락을 하나 더 사용해야 한다. 잊지 않고 새기도록 나무의 골격을 지켜야 한다. 골격만으로 진행할 수 있도록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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