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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형근 Apr 15. 2018

좋은 차는 좀 더 우린다

한번 만나 오래 지속하고 싶은 이가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으니

좋은 차는 버리기 아깝다.

우렴 상태로 하루를 묵힌다. 다음날 양호하면서 청소할 작정이다. 어떤 날은 이런 남은 차가 차탁에 즐비할 때가 있다. 오늘이 그렇다. 마치 무차별 차회라도 하듯 동시다발적으로 우린다. 지난 금요일 꽃놀이 아닌, 자본 놀이를 하는 현장에서 목구멍으로 칼칼한 날 선 공기가 들락댔나 보다. 이틀 뒤인 지금도 칼칼하다. 칼칼한 목구멍을 건드리면서 면역력을 키워주는 데는 차만 한 게 없다. 여리지만 차마다의 특성을 존중한다.


고요한 차실에서 맞이하는 생각

의 종류에 놀란다. 오늘처럼 뜻하지 않은 일에 봉착하는 날은 불순한 일기를 만난 듯, 심기가 불편하다. 어떤 이는 만나는 시간이 즐겁고, 그렇지 않은 이는 돌아서서도 기분이 썩 좋아지지 않는다. 이런 울울함을 털어내는 데에도 우림에서 남겨 둔 차의 역할이 한 몫한다. 미동에 의하여 마음을 털어내는 방식이다. 아주 작은 촉각을 일으켜 세워 그 촉각으로 심기를 다스린다. 작고 여리지만 그래서 별 것 아닌 것으로 치부하기에 적합하다.


여린 것에도 제 특성이 배어 있거늘

모여서 진열되는 순간 비교가 된다. 운남고수홍차가 빠르게 색상이 변한다. 동방미인도 그러하나, 운남봉경금아는 색상이 오래간다. 묽음에도 선명함의 정도가 다르다. 선명하지 않다는 것은 흐려 보인다는 말과 같다. 여리고 엷지만 선명함을 유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쥐고 있는 지위와 금력과 권력은 금방 흐려진다. 엷은 선명함을 유지하는 일은 내려놓는 일이다. 선명한 것은 식어도 다가서지만, 흐려진 것은 손이 가지 않는다. 이쯤에서 정리하고 마무리할 일이다. 보잘것없는, 그러나 엷고 선명한 것들에게 마음을 붙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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