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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형근 May 01. 2018

사람만이 적응하는 기적

그러니까 사람이라고 대답할 수 있는 자격

다리 저리다. 저리다, 저리다고 주절댄다.

아파도 아프다 소리 못하는 것보다야 자유롭지만, 자꾸 아프니 그조차 번거롭다. 그냥 아픈가 보다 한다. 그러나 매우 아프다. 신경을 건드린다. 나를 지탱하는 뼈의 일부가 협착되어 신경을 계속 찌른다. 하필이면 지금. 멀쩡할 때 많았다가 신기하게도 바람결에 실려와 살랑이며 왼쪽 발을 무척 다양한 방식으로 통증을 만들어 낸다. 따갑다가 둔중한 묵직함으로 망치에 맞은 듯하다가, 무엇보다도 걷지 못하고 주저앉는 게 자가치료이다.


최초가 있었으니 마지막도 있겠지.

중간고사 기간이다. 학교 가이즈카향나무와 백목련, 자목련 웃자란 가지를 전정하기로 한다. 오늘과 내일 이틀 작업이다. 저린 다리로 걱정은 되지만, 이 또한 사람이기에 적응 기제를 가졌기에 무모하지 않다고 여긴다. 살살 몸에 맞춰서 시작하면 될 것이다. 모든 게 마지막이라는 단어와 함께 의미 부여가 되고 있다. 물론 내 마음속으로 셈을 세듯 그렇게 손가락을 폈다 접는 정도의 하잘 것 없는 것들이지만, 그래도 의미 부여에 누가 뭐라 할까 싶어 내 마음대로 짚어 본다. 사람만이 도전적이고 불리한 환경에 적응하려는 놀라운 기제를 가졌다는 것을 익히 안다.


보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들도 함께 나타난다.

어제는 벽돌 포장 실습을 하면서 준비물을 점검하고 자리를 배치한 후, 과정별로 첨삭지도를 하였다. 다들 이론 공부한 그대로 꾸준하게 과정을 이어나갔다. 다만 기구를 다루는 숙련성이 부족한 것 외에는 문제가 없다. 숙련은 반복하면서 도달하는 것이다. 이론적인 정확성은 지켜야 한다. 머리로는 대답하면서 실제로는 다른 경우가 있다. 줄눈의 간격은 1센티미터라고 대답하면서 2센티미터, 1.5센티미터를 뒤섞는다. 비교하여 알려주어도 고칠 생각보다는 알았다고만 한다. 어떤 경우는 과정 자체에 임하는 자세나 태도에서 매우 하기 싫고 지겨운 풍경이 그대로 풍겨 나온다. 그러니 남보다 늦고 안 볼 때 슬쩍 다른 과정으로 옮기곤 한다.


어찌어찌 과정을 넘기면서 마무리한다.

집중으로 다가가서 잡아 줄 경우와 곁에 오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대충까지를 마무리한다. 시작은 같았지만 마치는 과정은 하나같이 다르다. 성취 정도에 따라 다음 과제 정리를 하도록 서로 다르게 진행을 손질한다. 그러면서 포장에 남은 자갈, 비닐 등을 정리하여 치우자고 권하는 과정에 내가 다른 곳을 쳐다보며 진행할 때, 두 명이 냅다 뛰듯이 온실 가장자리 울타리를 꺾어서 교실로 내뺀다. 같이 정리하고 함께 들어가자고 권했건만, 몇 명이 하는 사이에 그렇게 내가 안보는 순간을 표리부동하게 떠났다. 나중에도 모르는 척 실습과정평가서 작성만 하면서 시치미 뗀다. 씁쓸하다. 어쩌다가 아니라 자주 그러하였고, 내게 뿐이 아니라 꽤 많은 곳에서 그러고 있다는 반증이다.  겉과 속이 같아야 하는데, 비롯됨이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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