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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형근 Jun 24. 2018

빗속에 환하게 담장을 덮고 있는 진심의 나무

1. 고개 숙여 친밀한 정감-03.찔레꽃

1. 고개 숙여 친밀한 정감-03.찔레꽃


찔레꽃 향기 바람을 타고

국립산림과학원 산림텃밭의 찔레꽃


며칠 전 국립산림과학원 산림텃밭 시험지에 다녀왔다. 대학 때 샌드페블즈Sand Pebbles를 하던 후배의 근무지이다. 20여 년만에 만났다. 나는 그만큼의 세월을 동고동락한 또 다른 한 후배와 함께 갔다. 3명 모두 부부 동반으로 다녀왔다. 새롭고 기뻤다. 시험지에서 동분서주 연구하였을 후배를 생각하면서 기분이 남달랐다.

산림 실용화 이용에 관한 연구를 실천으로 옮기느라 노력하였을 후배의 시간들이 가슴을 저민다. 그의 세월이 내가 일궈 낸 학교에서의 포장 운영 경험과 맞물려 주마등처럼 빠르게 떠오른다. 


“지금까지 가장 큰 애로 사항은 뭐였지?” 

   혼잣말처럼 묻는다. 

“나를 끊임없이 이해시키고 설득하는 거였겠지.” 

   스스로 대답한다.


그와 나는 같은 길을 걷고 있었다. 후배가 만들었다는 비오톱에 눈길이 머문다. 도랑을 끌어 모은 제법 큰 웅덩이다. 비오톱을 조성하여 뭇 생명들의 보금자리를 만든 것은 멋진 일이다. 곳곳에서 생산되는 간벌목으로 곤충호텔을 만든 것도 수수하다. 그 뛰어난 미감이 아직 기억에서 떠나지 않는다. 포지 경계 역할을 하는 통나무울타리는 그 자체로 곤충호텔이다. 그리고 돌로 쌓은 담장은  파충류의 겨울 근거지로 훌륭하게 이용되고 있다. 뱀은 크고 작은 바윗돌로 쌓은 따뜻한 곳에서 겨울을 보낸다. 특히, 찔레꽃울타리에 꽂혔다. 무당벌레 등 작물 재배에 이로운 익충들이 군웅할거할 수 있는 곳이다. 이런 생태를 조성하여 유지하는 것은 단시일에 되는 게 아니다. 끊임없이 발길을 재촉하여 찾아다녔고, 하나의 생각에 또 다른 생각을 보태고 익혀서 군불을 때야 가능하다. 


후배의 시험지에서 참 많은 시사를 얻는다. 함께 간 또 한 명의 후배와 은밀한 눈짓을 교환하였다. 300평, 600평 하면서 어쩌면 둘의 눈빛에서 정년 후의 어떤 도발을 공유하였는지도 모르겠다.

간벌목을 일정한 간격으로 잘라 개켜 쌓아 공간을 구획하고 곤충호텔 역할로 이용하였다.


찔레꽃 향기 하나만으로도 청정해진다


그 향기에 들뜨기도 한다

어디에서 비롯되는 향기일까

그 근원을 궁금해 한다

어디에 뭉쳐 있다가 쏟아 내는 것인지

얼마나 긴 시간 속앓이를 하고 나서

내뿜는 향기일지

그의 처녀성에 몸 둘 바를  몰라 한다

순수함

그리고 은근히 빛을 내는 기품이

보면 볼수록 가슴을 저리게 한다

가까이 두고 오래 간직할 만하다

찔레꽃 향기 바람을 가로막는다

바람을 멈추게 하고 싶다

찔레꽃 향기 하나만으로도 청정해지는 느낌이다.


찔레꽃과 가뭄에 대한 사유


한국속담사전에는 “찔레꽃이리에 비가 오면 개턱에도 밥알이 붙게 된다.”는 말이 있다. ‘꽃이리’라는 말은 ‘꽃이 필 무렵’의 북한말이다. 가뭄을 많이 타는 늦봄에 적당히 비가 자주 오면 농사가 잘되어 풍년이 든다는 말이다. 찔레꽃이 피는 계절에 가뭄이 자주 든다. 가뭄이 드는 계절에 찔레꽃이 핀다. 그러니 찔레꽃이 비에 적셔 있는 날이 많아야 생활이 윤택해진다.

찔레꽃은 오래도록 우리 선조들의 삶과 정서를 함께 하였다

『이이화의 한국사』를 보면 ‘뿌리를 잃고 떠도는 하층민’의 <자작농 칠성이의 일기>에 자작농의 생활 수준을 알아보는 내용이 있다. 칠성이의 일기는 잡지 『조선농민』에 게재된 내용이다. 여기서도 찔레꽃에 대하여 “대추나무에 뿔나고 찔레나무에 꽃이 피거든 딸의 집에도 가지 마라.”고 했다. 묵은 곡식은 다 떨어지고 햇곡식은 아직 나오지 않아 먹을 것이 궁핍한 봄철, 춘궁기의 어려울 때에는 너나없이 먹을 것이 부족하니 시집 간 딸의 집에도 방문을 삼가라는 말이다. 그러니 찔레꽃의 그 수수한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슬픈 시선을 느낄 수 있다.


『한국민속대관』에도 ‘찔레꽃 가뭄’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모심기에 가장 적합한 시기는 음력 5월 하지夏至 전후 3일이다. 이때를 놓치면 늦모로 들어가서 적기를 잃게 된다. 또, 이때쯤이면 찔레꽃이 한창 만발한다. 이 무렵에 비가 오지 않아 가뭄이 드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일러 ‘찔레꽃 가뭄’이라고 짧게 단정 짓는다. 원망과 포기의 심정에 어떤 뜻 모를 결기를 담고 말하는 찔레꽃 가뭄이란 말은 이제 어떻게 살아야지 하는 긴 한숨이 슬프게 깔린다. 


소리꾼 장사익의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는 애절하다 못해 처절한 정서로 슬픔을 건드린다. 먹을 것 없어 인간으로서의 고결함조차 입에 담지 못했던 한의 정서를 담아내고 있다. 춘궁기를 모르는 세대에게도 그의 정서는 한과 슬픔의 유전자를 들춘다.


찔레꽃은 담장을 덮어 무성하네


조긍섭의 『암서집巖棲集』제2권에는 비 오는 날 찔레꽃 풍경이 차분하게 그려진 시가 있다.


우중에 주자의 운으로 읊다 2수〔雨中 用朱子韻 二首〕


남풍이 싸늘한 비 내리게 하여 / 南風動寒雨

자욱하게 서쪽 정원으로 들어오네 / 靄靄入西園

안개는 수목을 감싸 어둑하고 / 烟雲棲樹暗

찔레는 담장을 덮어 무성하네 / 蒺藜覆墻繁

이때에 단정히 기거하는 사람 / 是時端居子

생각이 무궁한 데로 들어가네 / 思入無窮門

다만 띠 지붕 처마 아래 / 但聞茅簷下

그윽한 새 서로 지저귐이 들리네 / 幽鳥相與言

향기로운 난초가 앞 숲에 있으니 / 芳蘭在前林

푸른 잎 어찌 그리 무성한가 / 碧葉何蒨蒨

저 그윽한 향기를 풍겨 / 散彼馨香氣

이 빈 방에 스미게 하네 / 入此虛堂徧

내 사랑하노니 그 덕의 아름다움 / 我愛其德美

또한 사람 가운데 선비와 같음을 / 亦如人中彥

흉금을 열고 가서 찾으나 / 披襟往從之

그윽하게 홀로 처하여 볼 수 없네 / 幽獨無由見


ⓒ 부산대학교 점필재연구소 ┃ 김홍영 (역) ┃ 2013


담장을 덮고 있는 찔레꽃이 빗속에 환하다. 앞 숲에는 난초가 그윽한 향을 내고 있어 고요한 풍경 속에 홀로 생각에 잠겨 있다. 음력 5월 초순에 찔레꽃이 피었고 마침 비가 오고 있으니, 농사짓는 이들 모두 기쁜 마음으로 밖을 내다보고 있다. 대개 찔레꽃과 비는 이렇게 오래도록 나란히 사유되고 있는 낭만적인 꽃이다. 또 찔레꽃은 생명력이 강하여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생활 속 친근한 식물로 인용되고 분별된 것을 알 수 있다.


습지생태원 조성과 비오톱 환경에 적합한 찔레꽃 군락지


둠벙이나 묵논은 그 자체가 비오톱이다. 여기에 비집고 들어가 군락을 만드는 게 찔레꽃이다. 따라서 찔레꽃 군락지를 조성하여 습지생태원을 만들 경우 무당벌레 등 순환 작물 재배에 유익한 곤충의 서식지를 제공할 수 있다. 찔레꽃 군락이 중요한 자원식물로 식재 조성해야 하는 당위성을 찾을 수 있다.

습지생태원에 도입 할 수 있는 식물종으로는 다음과 같이 집중도입과 일반도입, 잠재도입으로 구분한다.

·집중도입군 : 부들, 줄, 창포, 물달개비, 물봉선, 미나리

·일반도입군 : 갈대, 가래, 마름, 흑삼릉, 송이고랭이, 골풀, 돌피, 낙지다리, 물억새, 동의나물, 찔레꽃

·잠재도입군 : 버드나무류, 신나무, 참느릅나무, 참나무류, 찔레꽃, 조팝나무, 도루박이, 산조풀, 좀진고사리,뱀딸기, 으름덩굴, 새콩

찔레꽃 생울타리와 엄나무가 섞여 있는 무당벌레의 서식지


주연부나 척악지의 복원 수종


산림의 주연부는 식생다양성이 높고 풍부한 먹이자원 다양한 유형의 은신처로 그 가치가 생태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주연부는 곤충, 새 등의 동물에게 다양한 서식환경을 제공한다. 또한, 다른 인근 지역에 비하여 생물다양성과 개체군 밀도가 매우 높다. 따라서 찔레꽃 군락지 연장 길이가 길수록 곤충 및 새에게 좋은 서식환경이 된다.

찔레꽃의 군락지의 연장 길이가 길수록 곤충 및 새의 좋은 서식처가 된다.

찔레꽃은 햇빛을 좋아하는 수종으로 척박하고 건조한 환경에서도 잘 자란다. 추위에 강하고 맹아력이 우수하여 생장력이 강하다. 무엇보다도 내습성이 뛰어나 습지 환경에서도 잘 자란다. 환경의 복원력이 강한 수종인 찔레꽃의 줄기는 끝이 밑으로 처져 덩굴성 수형을 형성한다. 전정에 강하고 가지와 잎이 치밀하여 산울타리용이나 입면녹화수종으로 적합하다. 초여름의 순백색 꽃은 향기가 좋고, 가을철의 붉은색 열매도 탐스럽고 전체적으로 야생의 멋이 있다.


찔레씨와 꽃과 뿌리를 약용으로 이용한다.


찔레꽃은 꽃과 열매, 뿌리, 새순, 뿌리에 기생하는 버섯이 약으로 사용된다. 『세종실록 지리지』에 찔레씨蒺梨子가 약재로 기록되어 있다. 찔레꽃의 꽃은 ‘장미화薔薇花’라 하여 이것을 잘 말려 달여 먹으면 갈증을 해소하고 말라리아에 효과를 볼 수 있다. 뿌리는 이질, 당뇨, 관절염 같은 증세에 복용할 수 있다. 열매는 불면증, 건망증 치료에 좋고 각기에도 효과가 있다.

안덕균의 『한국의 약초』에는 찔레꽃의 열매를 영실營實이라 하며  “맛은 시고, 약성은 서늘하다. 노인이 소변을 잘 보지 못할 때와 전신이 부었을 때 쓰고, 노인이 불면증으로 꿈이 많을 때, 건망증 및 쉽게 피로하고 성기능이 감퇴되었을 때에 유효하며, 피부종기, 악창에 활용된다.”고 하였다.

찔레꽃의 열매를 영실이라고 하는데, 맛이 시고 약성이 서늘하다고 한다.

조태동의 『한국의 허브』에서 찔레의 용도를 “약용, 염료용, 인테리어 소품, 포푸리, 차, 허브 가든에 쓰인다.”고 하였다. 열매는 꽃꽂이 소재로 사용하는데, 늘어지면서 분위기를 사로잡는 강한 주제를 표현하기에 좋다. 

열매를 차나 탕으로 이용하는 방법은 2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열매에 푸르스름한 기색이 조금 남아 있을 때 따서 햇볕에 바짝 말렸다가 이용하는 방법이고, 또 하나는 아예 8~9월에 반쯤 익은 열매로 그늘에 말려 사용하는 것이다. 이때도 물에 넣고 달여서 복용하는 게 좋다. 우려먹는 것이 아니라 달여 먹는 것을 권한다. 말린 열매를 가루 내어 말차처럼 사용하여도 괜찮다. 꽃잎은 음지에 말려 포푸리용 소재로 쓰면 그 향과 멋을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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