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이타미 준(伊丹潤)과 유동룡(庾東龍), 조센징과

영원한 이방인, 이타미 준의 비오토피아

by 온형근

6. 이타미 준(伊丹潤)과 유동룡(庾東龍), 조센징과 재일교포


YouTube에 Itami jun’s SEA trailer (https://www.youtube.com/watch?v=RlW-ElbFQ5w)라는 건축다큐멘터리가 있다. 이타미 준의 바다라는 제목의 트레일러이다. 총 4분 정도의 동영상을 통하여 짧지만 강력한 이타미 준에 대한 단서가 나온다. 이타미 준과 바다, 그리고 이타미 준의 정체성에 대한 끝없는 탐구 등이 전면에 나타난다.


이타미 준과 교류하고 작업한 사람들은 이타미 준을 ‘양반’이라고 부른다. 그냥 양반이 아니라 ‘정말로 양반’이라고 한다. 갤려리 Q 대표인 ‘우에다 유조’가 한 말이다. 건축사진가 ‘사토 신이치’는 이타미 준을 ‘무서운 것과는 다른 의미에서 굉장한 강인함을 지닌 분’이라고 평한다.



‘행복이 가득한 집’ 2011년 9월호에는 영면에 든 이타미 준을 <건축가를 기리며>라며 딸과 애제자가 추억하는 이타미 준의 기사가 실렸다.


“이타미 준이 2011년 6월 26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재일 교포 건축가로 불렸지만, 정작 그는 어떤 한국 사람보다도 한국적 미를 사랑한 사람입니다. 건축가로 치열하게 살면서도 겸손한 배움의 자세를 잃지 않은 그. 옆에서 가장 가깝게 지낸 그의 분신 같은 딸 유이화 씨와 가장 아끼던 제자 진교남 씨가 이타미 준 선생님과 함께 보낸 시간을 추억합니다.

”자연앞에 겸손하던 건축가, 이타미 준 http://happy.designhouse.co.kr/magazine/magazine_view?info_id=57059

딸 유이화씨가 기억하는 아버지 이타미 준의 기사 타이틀은, ‘술과 이야기, 사람 좋아하던 나의 아버지’이다. 가장 사랑하던 제자 진교남 씨가 이야기하는 스승 이타미 준의 기사 타이틀은 ‘천생 예술가이던 나의 선생님’이다.


이 잡지에서 이타미 준의 소개글을 보면 다음과 같다. 고려시대 3대 장군 중 한 분인 유금필 장군의 후예라는 소개글이 인상적이다.


“이타미 준은 1937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고려시대 3대 장군 중 한 분인 유금필 장군의 후예이며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으로 평생 조선의 미를 사랑한 건축가다. 건축과 예술 사이, 일본과 한국 사이를 넘나들며 여러 건축물을 남겼다. 대표적으로 국내에 2001년 12월에 완공한 제주 포도 호텔을 디자인했고, 2003년 프랑스 국립 기메 박물관에서 생존 건축가 가운데 최초로 개인전을 열었다. 2005년에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문화 예술 공로훈장 ‘슈발리에’를 받기도 했다.”


이화여대에서 실내환경디자인을 전공한 큰딸 유이화는 아버지가 무송 유庾씨의 34대손으로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이 컸다고 회상한다. 또한 잡지 LUXMEN, ‘이타미 준의 딸, 건축가 유이화’라는 기사에서도 이타미 준에 대한, 아버지에 대한 열쇠꾸러미를 더 꺼내 놓았다.

이타미 준이라는 이름은 예명이다. 이타미 준의 아버지는 경남 거창 출신이다. 딸 유이화는 한국사람이니 한국에서 교육받고 한국 대학에 가야 한다. 딸이 건축을 공부하고 싶어할 때, 처음에는 반대하였다.


온기가 느껴지는 이타미 준의 건축 유 대표는 “아버지는 감동을 주는 건축을 지향했다”고 설명한다.

“건축가는 두 부류가 있다. 하나는 논리적 이성적으로, 또 다른 부류는 감성적으로 접근한다. 아버지는 후자다. 시를 쓰고 글을 쓰면서 마음으로 건축을 했다. 건축주에게도 그렇게 대했고 감동을 주는 건축을 추구했다. 주택이라면 들어와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아버지는 건축을 대지의 콘텍스트(Context)를 추출해 건축가의 사상을 입력하는 것이라고 했다. 세월이 흐를수록 빛이 나야 하고 따뜻한 손의 온기가 느껴지는 것이어야 한다고 했다.”
- 매일경제 Luxman 제15호, 2011년 12월, ‘이타미 준의 딸, 건축가 유이화 기사에서
http://luxmen.mk.co.kr/view.php?sc=51100007&cm=People&year=2011&no=769523&relatedcode=


이타미 준은 일본에서는 조센징, 한국에서는 재일교포로 불리는 현실에서 정체성 혼란에 시달려 왔다. 지난 2014년에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이타미 준 : 바람의 조형>전이 열려 이타미 준을 새롭게 조명한 일이 있었다. 이때 월간 SPACE 편집장, 박성진의 ‘영원한 이방인의 한국건축’이라는 글은 울림이 크다.


(전략) 그러나 이 같은 국제적인 성과와 인정에도 불구하고 한국 건축계에서 그는 늘 혼자였다. 건축가 김중업, 장세양 이후 동시대 한국 건축가와의 교류는 겨울 가뭄에 말라가는 차가운 저수지의 물처럼 얼고 녹기를 반복하며 서서히 사라졌다. ‘일본에서는 조센징으로, 한국에서는 일본인’이라는 배타적 기운에 둘러싸여 소속 부재의 이방인으로 홀로 서야 했다. 탈식민주의 이론을 연구해온 호미 바바(Homi K. Bhabha)의 서술처럼 이타미 준의 정체성은 ‘국가적 연대와 이주국의 동화정책 사이에 낀 것으로, 곧 실제적인 해결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는 민족적 사회적 연대의 차이로 인해 늘 구분되는 존재로 문화대지들 사이 어딘가에 머물러야 했다. 그의 자리는 이쪽도 저쪽도 아닌, 여기도 저기도 아닌 불확정적인 중간영역에 존재했다.

작가의 입지와 명성이 사회적 유대관계 속에서 잉태되고 다져지는 한국 사회의 속성을 감안한다면 지금까지 왜 이토록 건축가 이타미 준에 대한 평가가 두텁지 못했는지 이해할 만하다. 그의 건축이 어느 순간 사회적 관계를 벗어나 자연의 서정과 알레고리를 홀로 탐닉하기 시작한 것도 내면 깊숙이 자리한 근원적 외로움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이번 전시야말로 한국에서 처음 이루어지는 그에 대한 온전한 평가의 자리인 것이다.
월간 SPACE 2014년 3월호 (556호), 박성진
Itami Jun, Carved Tower, pencil on peper, 118×84cm, 1988
Section 5. Architecture of the Wind: The Jeju Project,
Section 3. Phase 2: Pursuit of Indigenousness

의외로 이타미 준의 전시 중 1부 ‘근원’은 그가 이방인이 아니라는 반증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건축예술세계가 한국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음이 분명하였다. 조선의 건축과 민화에 관한 저술과 수묵 및 단색 추상화는 그를 한국 정통문화의 서사로 자리잡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이타미 준의 자리는 이쪽도 저쪽도 아닌 중간지대에 위치한다. 그런데 말이다, 그 지점이야말로 자아와 타자라는 이분법의 구조를 해체하고, 번역 불가능한 두 문화가 서로 교유하는 창조적인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문화적 의미가 끊임없이 협상되고 재구축된다. 즉 이타미 준은 한국의 현대건축을 끊임없이 재의미화해 우리와 세계에 선보여왔던 것이다. 술에 취해 “나는 영원한 이방인이야!”라며 고함치던 그의 존재와 건축을 우리는 재평가해야 한다(월간 SPACE 2014년 3월호,556호, 박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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