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도 희고 갈매기도 희다

모래와 갈매기를 분간할 수 없다

by 온형근

은사님과 화순을 다녀왔다. 곡성에서 바로 광주로 해서 그렇게 한국 원림의 백미인 정자 원림을 둘러보았다. 화순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함께 동행한 선생님의 안내가 그렇게 안정적이었기도 하지만, 보는 눈이 있는 전공자에게 설명과 안내가 없어도 놀라움이다. 조광조 유배지로 시작하여 적벽까지 돌며 마지막 어스름에 김삿갓 시비공원에 들렸다. 늦은 시간이지만 은사님과 나는 사진으로 기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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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먼 산에서 해가 넘어가고 있고, 나는 김삿갓이 죽기 전에 머물던 친구 집의 맞은편, 화순에서 조성한 김삿갓 시비 공원에 있다. 사진에 있는 예서 글씨는 우리를 안내해준 신정자 선생님이 쓴 작품이다. 잠 많은 아낙이라는 제목의 김삿갓 시이다.

多睡婦 (다수부) 잠 많은 아낙

西隣愚婦睡方濃 不識蠶工況也農서린우부수방농 부식잠공황야농

機閑尺布三朝織 杵倦升糧半日春기한척포삼조직 저권승량반일춘

弟衣秋盡獨稱搗 姑襪冬過每語縫 제의추진독칭도 고말동과매어봉

蓬髮垢面形如鬼 偕老家中却恨蓬 봉발구면형여귀 해로가중각한봉

이웃 어리석은 아낙은 낮잠만 즐기네, 누에치기도 모르는데 농사짓기를 어찌 알까

베틀은 늘 한가해 베 한자에 사흘 걸리고, 절구질도 게을러 반나절에 식량 한 되 찧네

시아우 옷은 가을이 가도록 말로 다듬질하고, 시어미 버선 깁는다 바느질하며 겨울나네

헝클어진 머리 때 낀 얼굴이 귀신같아, 같이 사는 식구들이 잘못 만났다 탄하네


그 시대를 저렇게 살아갔다는 것은 대단한 내공 이리라. 지금도 어려운 일을 어떻게 이루었을까. 어떻게 인지되게 하였으면 두 손 들게 하였을까. 와, 김삿갓은 어찌 저런 사정을 귀신같이 잡아냈을까. 시인은 또 다른 세계를 끄집어내는지라.


모두 희다. 해서 두루 구별되지 않는다. 아무도 한 곡조 뽑으려 하지 않는다. 잠만 자야 하는데, 잠을 청해야 하는데, 두루 실망스러운 일이 허옇게 번진다. 아무 색조 하나 뽑아낼 수 없다. 그냥 희기만 하다. 그래서 아무것도 집히지 않는다. 일도 잡하지 않는다. 그래도 뭔가를 하는 것처럼 기척 하고 움직여야 한다. 잠 많은 아낙처럼 늘어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무 걱정 없는 저 내공을 어찌해야 가까이 모실 수 있을까. 도처 실망스럽다. 이 무기력함이 기대고 있는 실망의 단초를 잠으로 지워도 될까. 잠을 청하면 실망도 엷어지고 따라서 무기력함도 가라앉아 기운을 올릴 수 있을까. 모래도 희고, 갈매기도 희서 분간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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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鷗

沙白鷗白兩白白

不辨沙白與白鷗

漁歌一聲忽飛去

然後沙沙復鷗鷗


흰 갈매기

흰모래 흰 갈매기, 둘 다 희고 희니

흰모래와 흰 갈매기, 분간이 안 가네.

어부의 노래 한 곡조에 홀연히 날아가버리니

그제야 모래는 모래, 갈매기는 또 갈매기 된다.


모래도 희고 갈매기도 흰데 노래 한 곡조에 갈매기 나니, 그제야 모래와 갈매기가 분간된다는 김삿갓 시가 맛깔스러운 예서로 돌에 새겨져 있다. '탕'하면서 총소리라도 울려야 안개 가득한 이 도시에서 헤어 나올 수 있을게다. 백마강의 안개가 걷혀가면, 백마교를 건너 부소산성에 오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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