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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형근 Nov 17. 2018

광서 육보차의 짙은 안갯속

차를 마시니 안갯속을 걷는 듯 잦아든다

가끔 끄집어낸다. 

이제 두어 번 정도 우릴 양 남았다. 깊은 잠을 이룬 날이라서 더욱 차맛이 그윽하다.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의 진원지는 같은 층이 아니었다. 같은 층에서 서로 왜? 매일 저렇게 돌릴까. 하면서 서로 의혹을 가졌었다. 문자를 보냈다. 이런 소리가 매일 들리는데, 거기는 안 들리냐고 물었다. 전화가 왔다. 나는 그쪽에서 매일 그렇게 세탁기를 돌리는지 알았단다. 서로가 의아해한 것이다. 일단 의혹은 풀었으나, 그럼 아래층은 왜 그렇게 매일 세탁기를 돌리는가에 대하여는 남았다. 


아아, 드디어 옆집에서 

잠 좀 자자고 아래층에 한마디 고언을 했는지, 조용해졌다. 얼마 만에 깊게 잠을 이루었는지 모른다. 아예 소리가 나지 않는 것, 나도 작게 나는 것, 내 생각에서 의혹이 지워지고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 어느 유형일 것이다. 실제로 조용하다. 저녁에 시작하여 잠자리 들 시간 내내 이어지고, 새벽 두 시쯤 잠깐 그쳤다가, 다시 아침이면 돌아가는 게 일상적이지 않다는 생각과 동시에 잠 못 이루며 신경이 곤두선 것이다. 어제까지 견디기 힘든 정도였다.


공간에서의 낯섬과

 물리적으로 어찌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까지도 견딜 수 있다. 그게 일상이다. 그런데 알지 못하는 어떤 이해와 해석의 문제에서는 쉽게 물러나지 못한다. 그러니 안다는 것이 얼마나 앙상궂은가. 마치 지식만이 가장 잘 짜여 있는 정교함과 날씬함이 있어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얇고 가벼워 언제라도 어설프고 날아가기 가장 쉬운 것이다. 방금 전까지 세탁기 소리를 해결하지 못하는 무능함을 탓하였더니, 이제 달라진 게 뭐 그리 있다고 이리 쉽게 수긍하는가. 그러니까 이해가 되었다는 게다.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 


이럴 때 익숙한 차를 우려낸다. 

기억의 향유이다. 외적인 압박에서 잠시 내적인 사유로 되돌린다. 걷는 일과 문화콘텐츠를 구축하는 밑그림 만드는 일로 자리한다. 내 분야, 내가 살아온 영역의 모든 것을 문화콘텐츠로 되살린다. 전체적인 윤곽은 마련되었다. 총론에서 각론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런 입장에서 주어진 일상을 먼저 처리해야 한다. 가을 마치고, 겨울이 오면, 긴 겨울 동안 오로지 한 가지 일로 내년 4월까지 완주한다. 그 안에 또 다른 무엇을 개입하거나 늘릴 수 없다. 그리하여 내년 4월 이후에야 실질적인 문화콘텐츠 구축 계획과 실천의 손맛을 익힐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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