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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형근 Jan 29. 2020

골계미

하루를 여는 차 공양을 통하여 큰 숨 쉬는 것을 체득한다. 금년 황차가 서너 번 우리면 엷어져서 영 성에 차지 않는다. 이런 생각을 나누다가 '아차'한다. 무겁고 진중한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한 원초적 욕망이 골계미이다. 웃고 넘기자는 것이다. 가볍게 치부하면서 무거움에서 벗어나고자 함이다. 웃고 넘기지만 그 속에서 깊고 넓은 세계를 지닌다. 왜?라는 데에서 출발하는 지적 욕구도 오래된 인류의 유산이다. 제다 할 때의 차이가 뭐이기에 다를까. 물론 줄기차게 비 오는 특정 기후의 어느 해와 쾌청한 어느 해는 다를 것이다. 그거야말로 하늘이 돕는다는 이치를 말함이다. 세상이 녹록하지 않으나 함부로 재단하지 말 지어라! 알지도 못하면서 나서지 말라! 과연 그럴까. 모자라면 느낌도 없나. 알지 못하지만 오감은 있지 않은가. 끊임없이 생각은 변화하고 진화한다. 너도 나도 중얼거리면서 산다. 그러다가 바른 생각과 올바른 느낌 하나를 건진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나서 성숙할 그 어떤 것도 생겨나지 않는다. 생각 하나 일고, 떠돌다 소멸하는 것의 끊임없는 반복과 연속이 삶이다. 차 한 잔의 사색 또한 그러하다. 정해 놓은 길로 가는 게 아니라 제멋대로의 길을 나아간다. 사색의 가장 큰 매력은 제멋대로 진행하다가 어느 순간 나를 되돌아볼 수 있다는 점이다. 나는 내 자신에게는 무겁고 진중하지만, 일순간 가벼워서 겉으로는 싱거운 사람처럼 여겨진다. 심각한 관계로 서먹한 데, 막걸리 한 잔으로 언제 그랬느냐는 듯, 한 번에 무장해제한다. 아흔아홉 번 성심으로 살다가 제 화를 꿀꺽 삼키지 못하고, 마치 정의로움의 화신처럼 한 번의 막말로 아흔아홉 번의 공든 탑을 허문다. 어려서는 듣기 싫은 말 중에 하나였는데, 이제는 '그게 나'라고 인정한다. 하지만 점점 그런 경우에 맞닥뜨리는 일이 확연히 준다. 세상의 관계에서 저만치 물러나 있다는 증표이다. 어차피 흐르는 물처럼 이 턱과 저 턱에 부딪히고 좁은 곳은 빠르게 너른 곳은 느리게, 때로는 고르지 않은 바닥층에 따라 출렁거리며 흐른다. 사라짐도 그러할 것이다.

-이천십구년 구월 열엿새날, 與言齋에서  退關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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