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꽃 속에 헛꽃과 참꽃이 진화하는 나무
하얀 부채 연이어 들고 부채춤을 춘다
자꾸 헷갈려서 무슨 나무냐고 묻는 나무들이 있다. 그때마다 무심코 대답하다 보면 나도 헷갈리기 시작한다. 자주 만나 상태를 살피며 감정 이입의 경지에까지 다가서야 자잘한 정을 나눌 수 있다. 어떤 나무와도 안부를 나눌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발품을 부지런히 사용해야 한다. 감정이입은 타자의 상처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연민이다.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고 생명에 대한 기꺼움을 실현하는 주체가 되는 것이다. 하얀 부채춤을 추듯 꽃이 피는 백당나무 이야기다. 백당나무는 사촌들이 많다. 그 사촌들 하나같이 예쁘고 강렬하다. 그냥 보기 좋고 기분 좋게 한다. 굳이 구분할 필요 있겠는가 싶은 나무들이다. 그러니 자주 만나 가까이서 볼 수 있도록 사촌들 모두 함께 살 수 있게 조성해야 한다.
나무와 사귀는 일은 서로를 꾸준하게 보여주는 일
나무와 사귄다는 것은
꾸준하게 서로를 보여주어야 하는 일이다
가만히 머리로 암기하거나 계산하여 정리하는 게 아니다
이게 생활 속에서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더군다나 스스로를 어느 상황에 내몰아 치닫는 것을
경계하는 형편이고 보니 더욱 그렇다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계획에 의해 서로를 관찰하는 것이 나무를 공부하는 방법이다. 그럼에도 원체 세상 일에 그때마다 감흥적이며 즉발적인 감성에 이끌리다 보니 때로는 나무를 까마득히 잊고 살게 된다. 주변에 쉽게 만날 수 있는 나무들이야 다르지만, 일부러 찾아가 만나봐야 하는 나무들에게는 미안한 일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지 못하는 동안 그 역시 내 곁에서 멀어져 있다.
알고 있다가 잊고, 만났다가 이동하는 계절처럼
보통 사람들은 나무가 꽃을 화려하게 또는 은은하게 자신이 처한 정서와 맞아떨어져 느낌이 올 때, 그 나무를 알고 싶어 한다. 그러다 꽃이 피는 계절이 지나면 다시 그 나무의 이름을 잊는다. 체계적일 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꽃은 지고, 또 다른 나무의 꽃을 만나고 그렇게 느낌은 이동하고 변한다. 계절이 오면 가만히 있어도 만날 수 있다. 특별히 감추어 둘 사연 역시 없다.
폭넓은 인문학적 상상력이 동원되는 나무와 대화하는 게 참 좋다. 그래도 나무에 대하여 갑자기 질문을 받으면 잠시 뜸을 들이게 된다. 백당나무 역시 그렇다. 백당나무, 불두화, 별당나무, 설구화, 산수국, 수국으로 이어지는 꽃들이 서로 비슷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많다.
한 꽃 속에 헛꽃과 참꽃이 있는 진화
백당나무는 잎이 오리발처럼 3갈래로 갈라진 모양이다. 보통 5월이면 꽤 큰 크기의 꽃송이가 피는데 접시 모양이다. 백당나무와 비슷한 나무들이 많은데 그중 불두화가 있다. 수국백당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백당나무 꽃의 가운데 있는 자잘한 꽃을 모두 없애고 무성한 가짜 장식꽃만 남긴 둥근 꽃송이가 특징이다. 불두화는 열매를 맺지 못한다.
별당나무는 일본 원산으로 백당나무와 같은 꽃차례를 가지고 있으나 잎이 다르다. 백당나무와 불두화의 관계처럼 설구화는 별당나무와 비슷하나 꽃송이가 둥글며 모두 가짜 장식꽃만으로 이루어졌다. 산수국의 꽃 또한 백당나무와 비슷하나 자세히 보면 산수국은 약간 푸른 빛이 돌고 백당나무는 희거나 노란 기운이 돈다. 그러나 백당나무, 불두화, 별당나무, 설구화는 인동과에 속하며 수국과 산수국은 범의귀과에 속한다.
불두화와 구분이 어려운 나무로 나무수국이 있다. 꽃만으로는 정말 헷갈린다. 그러나 잎은 불두화가 백당나무처럼 몇 갈래로 갈라진 반면에 나무수국의 잎은 톱니가 있으면서 타원형의 잎모양이다.
백당나무의 꽃은 특이한 생김새를 가졌다. 꽃 가장자리와 가운데가 모양이 서로 다르다. 가운데 작게 황록색으로 맺혀 피어나는 것이 진짜 꽃인 유성화로 결국 열매로 자라는 참꽃이고, 가장자리를 화려하게 두르고 있는 동전만 한 새하얀 가짜 꽃이 씨를 맺지 못하는 무성화로 나비처럼 감싸듯 에워싸고 있는 들러리 꽃이다. 헛꽃인 셈이다.
본능적 생존 전략을 펼친다
헛꽃을 무성화라 한다. 백당나무의 헛꽃은 화관이 넓어 곤충의 눈에 잘 띄게 하는 장식화의 역할을 한다. 동시에 곤충의 안전한 착륙 장소가 된다. 진짜 꽃인 꽃의 가운데 부분에 있는 유성화에 벌과 나비를 많이 불러들이기 위한 장치라고 보면 된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가짜 꽃이 먼저 활짝 펴서 진짜 꽃이 다 필 때까지 매달려 있다. 자신에게 이로운 날카로운 생각만으로 살아가는 게 아니라, 나보다는 주변을 배려하는 희생의 마음씨다. 안쪽의 진짜 꽃이 돋보이도록 새하얀 큰 꽃을 수평으로 활짝 피워 더 크게 더 넓게 보이게 한다. 가짜 꽃은 오래도록 생생하고 진짜 꽃은 꽃이 진 듯 희미한 존재감이다. 생존을 위한 진화의 결과다.
백당나무는 그래서 활짝 폈을 때가 지고 있는 때로 여겨진다. 꽃 크기의 3/4의 중간 부분은 자잘하고 1/4의 가장자리는 화려한 채로 피어 있다. 마치 채근담의 한 구절을 읽는 듯 여유를 지니고도 그것을 다하지 않는 뜻이다. 너무 완전하려 할 때 내부에서 변고가 생기거나 외부에서 우환이 든다. 태생적으로 아주 작은 꽃들을 가져 수분활동이 불리하다. 숲 속의 곤충들에게 선택될 여지가 적다. 꽃이라도 크고 화려하여 멀리서도 눈에 잘 띠어야 한다. 작은 꽃 주변에 제 몸보다 훨씬 큰 장식을 달아 멀리 있는 곤충들을 유혹해 자손을 남기는 거사를 치른다. 유혹하는 부분과 생식하는 부분의 역할을 달리한다. 살아남기 위한 생존전략이다.
그리하여 백당나무는 열정 가득한 붉은 열매를 맺는다. 가을을 지나 겨울까지 그 열정이 쉽게 식지 않는 것을 보면 그 공로를 들러리였던 가장자리 무성화에게 안겨주어야 한다.
백당나무의 열매는 열반을 기다리는 듯
꽃이 지고 나면 가을부터 겨울까지 빨간 열매가 달리는데 그 빛이 참 반짝이며 아름답다. 빨간 열매 속 씨앗의 모양도 하트 모양과 닮아 있다. 겨울에도 열매를 볼 수 있는 것을 보면 새들이 백당나무의 열매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겨울 백당나무 근처는 잎이 떨어져 썩는 냄새가 강하다. 주변 사람들이 가까이하려 하지 않는다. 허탕 치듯 한 가지씩 부족한 기질도 있어야 발달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백당나무는 초가을의 빨간 단풍과 열매도 품격과 운치를 지녔다. 그러나 초파일을 전후하여 사찰 주변에서 작은 꽃 수십 개가 모여 뭉게구름처럼 피어나는 나무는 불두화다. 가지가 휘어지도록 터질 것 같이 피어나는 불두화는 꿀샘도 없고 향기를 내뿜을 이유도 없다. 처음 꽃이 필 때는 연초록 빛깔이며 완전히 피었을 때는 눈부시게 하얗고 꽃이 질 무렵이면 연보랏빛으로 변하는 게 불두화 꽃송이의 매력이다.
『중국본초도감』에서 계수조鷄樹條는 백당나무의 가지와 잎을 사용한 생약명이다. 백당나무는 산비탈과 숲가에서 자라며, '봄과 가을에 눈지嫩枝의 잎을 채취하여 그늘에서 말리거나 혹은 신선한 채로 사용한다.'고 되어 있다. 눈지의 눈은 '어릴 눈'자를 말한다. 어린 가지의 잎을 채취하여 그늘에 말려 사용하는 것이 계수조인 것이다. 통경활락通經活絡, 해독지양解毒止癢에 효능이 있다. 경락을 콸콸 잘 통하게 하고, 독을 풀고 가려운 것을 그치게 하는 데 쓰인다는 말이다.